며칠 전 조선일보 기사에 났던 이사 떡 얘기. 만약 기사와는 반대로 이사 떡을 준비하고 가가호호 방문하며 떡을 나눠주는데 우리 집에만 배달(?)이 안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더구나 새롭게 이사를 온다기에 반기며 이웃으로 함께 잘 살아보자며 먼저 인사까지 한 입장이라면 얼마나 소외감이 들까? 까짓 떡 꼭 먹어서 맛이 아니다. ‘나도 그 정도의 떡이라면 한 시루 아니 열 시루는 못 되도 아홉 시루 정도는 해 먹을 능력 정도는 된다. 그런데 내게 떡을 안돌려..???’ 이런 기분 안 들까?
그날 뒤뜰의 우리 집개가 저녁쯤에 계속 짖어댄다.‘아유~! 저 놈의 개새끼가 왜 저리 짖어?’ 그리고 놈이 짖는 뒤뜰(정씨네 집 쪽)을 바라보니 옴마~! 정씨네 마당도 모자라 옆집 문 선생네 마당까지 차량들이 즐비하다. 무슨 연고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위 집들이를 하는 모양이다. 아니 확실히 집들이를 하고 있다. 윗마을 김씨 그리고 요양원 뒷골 이씨가 화장지 보따리를 들고 가는 게 내 눈에 뜨였기 때문이다.
‘저 짓거리가 뭣 하는 짓 거리라냐? 옴마! 이것은 하나의 충격적 사건이 아니겠는가?’라며 후다닥 아내를 불렀다‘진이엄마! 저거 정씨네 집들이 하는 거 맞지?’,‘음~! 그런가 본데...’, ‘그런데 어째서 쩌~거 골짜기 이씨와 윗집 김씨는 부르며 우리는 안 부르지..?’,‘아이! 좀 기다려 봐요! 부르겠지...’저녁도 굶어가며 정씨네로부터 전화오기만 기다렸지만 늦은 저녁까지 연락이 없기에 아내와 나는 저녁을 먹었다. 사실 그날 저녁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남의 집들이에 초대를 받지 못했다고 기분 나빠 보기는 정말 머리털 나고 처음이 아닌가 생각됐다. 그러나 내가 그런 사건(?)으로 꼬~옹 하거나 소갈머리 좁게 마음에 오래 두는 성격은 아니다. 내 평생에 그저 하루에 지나지 않는 그런 날이었을 테니까.
이제 대충 이사도 하고(비록 주말에만 내려오지만...)자리도 잡혔을 정씨네다. 그런 어느 날 아내는 부녀회장 자격으로 저녁 때 정씨네 댁을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화장지를 사고 세탁기용 세제를 사고, 그렇게 인사를 다녀왔다. 시간 남짓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왔다는 것이다. 뿐 아니라 정씨가 지난 해 말로 정년퇴직 처분(?)을 받았는데 2년 연장이 되어 기분이 좋다는 것, 이 마을이 너무 마음에 든다는 것, 자신들의 집 입구를 포장해야 하는데 마을주민들이 협조 좀 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 등등.... ‘잘 했네. 잘 했어!’아내에게 들려 준 내 얘기를 끝으로 그 이후로 그들에게 크게 관심도 신경도 쓰지 않고 이날까지 지내 왔던 것이다.
약 한 달 전이던가? 아! 지금 생각해 보니 최公에게 시유지자투리땅을 양도하기로 했던 그날 저녁이었다. 술도 한 잔했고, 늘 2차로 행해지는 음주가무로 산골의 밤을 즐기는 문화행사가 있기 전 이PD에게‘아까 보니 정씨네도 왔던데 그 양반들도 부르시지요?’,‘아! 그럴까요?’그리고 정씨에게 전화를 하니 무엇인가 정리 중인데 그것이 끝나면 오겠다며 흔쾌히 답을 하더란다. 그러나 늦은 밤까지 그들은 오지를 않았고 그날의 파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내가 지금‘산골일기: 왕따를 자초하는 인간들’이라는 제하의 썰을 풀게 된 동기는 조선일보의 ‘이사 떡’ 얘기가 기사화 되던 날 저녁에 일어났다. 그날도 우리는 이PD네 집에 모여 초졸 한 파티를 열고 있었고, 파티 열기 전 나는 이PD에게 정씨네도 초청하자는 얘기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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