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건대 내 평생에 술을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신 적이 두세 차례 있었나 보다. 30대 중반 쯤 대취하여 음주운전을 하며 좁은 상가골목을 빠져나오다가 가게 두어 곳을 파손 시키고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으면 좋으련만 경찰간부로 계시던 친구 사돈의 팔촌 직위와 함자를 팔아가며 큰 소리 쳤다가 술이 깬 다음 코가 땅에 닿도록 사과를 했지만 부풀려진 가게 파손 손해는 당연한 거고(합의를 안 해오면 구속까지 갈 수 있는 상태라...), 합의서를 제출 하고도 당시(30여 년 전, 그 때는 음주운전에 대한 벌칙이 그래도 유할 때였지만...)로는 거금인 350만의 중벌을 받았던 적, 술이 취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오긴 왔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차를 어디다 주차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아 두어 시간 찾아 헤맨 결과 집에서 2-300m 떨어진 골목 그것도 한 가운데....성질난 그 동네 주민 중에 어떤 분이 양쪽 백미러와 뒤 타이어 오른쪽을 바람을 다 빼 놓았지만 아야! 소리도 못하고 렉커를 불러서 정비공장에 보냈던 일.(사실 요즘처럼 대리운전제도가 있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요즘은 단 한 잔의 술을 마셔도 또 아무리 멀어도 대리운전을 꼭 부른다.)그 사건이 이후 대오각성하고 절대 작취미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지 않는다.(또 신체적으로 위암수술을 한 관계로 술이 그렇게 들어갈 장소도 없을뿐더러 조금만 마셔도 쉬 취한다.)그런 즉 정신 줄을 놓고 상대와 무슨 대화를 하지는 않는다. 엄한 얘기가 좀 길었지만....

혹시 내 마음이 변할까? 그래서 그랬던지 최公은 서둘러 흙 다섯 차 들여왔다. 그런데 참 낭패다. 살펴보니 이건 흙이 아니라 돌아 잔뜩 들은 모래다. 차라리 안 받느니 못했다. 그래도 어쩌겠나....저 모래를 반드시 펴고 그 위에 개 집을 올려야겠다. 개X치기 좋게. (이곳에 2차를 받았다.)
약간 취기가 돌았지만 인사불성은 아니었고 그런 상태에서 대인의 여유를 부리며“아! 그렇게 하시지요!”너무도 화끈한 확답을 하고만 다음날 아침. 엊저녁 술자리를 복기해 보니 후회가 갑자기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화끈한 확답이 아니라 매사를 함께 상의해 오는 반쪽의 의사타진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였다. 혼자결정하고 혼자 생색내고.....반쪽에 미안하고 죄스럽고,,,,그래서 서울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진이엄마! 나 어제 저녁 실수를 했네...”,“또 왜? 뭐를...??”어제저녁 이PD네 함께 모였던 것, 술 한 잔 하고 노래도 불렀던 것, 이런저런 얘기 끝에 축사입구 자투리 시유지 최公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했다는 거. 한참을 듣던 아내“어제 많이 취한 모양이지?”, “아니..그런 건 아니고...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할 수 없지 뭐...어떡해...”(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가 이런데 있다. 남편의 실수나 독선을 크게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묻어 주는...) 그리고 아내는 며칠 뒤 이곳에 내려와 약간 아쉬운 듯“그곳에 오미자 좀 심고 싶었는데...”그리곤 내 눈치를 봐가며 씨~익 미소만 짓고 말았다.

이곳에(축사 있던 곳의 밭)에 흙을 세 차 받은 것은 지난 여름 장마 때 길이 많이 파여서 그 길을 메꾸고 돋우려는 계산이었는데, 이 또한 말짱 도로묵 된 거 같다. 저 흙 역시 흙이 아니라 모래다. 초치 곤란이다. 그래도 일단은 펴 놔야 겠지?
어쨌든 나로서는 하루 저녁 술 한 잔에 금쪽(?)같은 땅을 최公에게 양보했던 것이다. 굳이 술타령을 하자는 게 아니고, 이것도 산골에서 이웃과 함께 하며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하는 생각에 중언부언 긴 썰을 풀어 봤다.

이번 썰을 푸는 동안'걸레 아우님'은 최公이 요구하는 땅에 똥거름을 모으는 장소로 하라는 충고를 주셨다. 그 충고(?)를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사실 이 교장이 속을 썩일 때 위 사진상의 공터를 사려고 했다. 원래 이 땅이 약100평인데 이 교장이 사려고 했으나 땅 주인과 가격시비로 여태 공터로 남아있다. 난 그 때 그것을 웃 돈을 더 얹어서라도 사가지고 실제 똥거름 숙성 시키는 장소로 사용 하려고 했는데, 마누라가 펄쩍 뛰며 죄 짓지 말라기에 포기 하고 말았다. 이 교장과 화해 했으니 마누라의 판단이 옳았다. 내가 그 충고에 배꼽을 잡고 웃었던 것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도 있구나...하는 ㅎㅎㅎ..

그러나 원수니 악수니 해도 내 집을 중심으로 100여m반경 이내의 이웃들이다. 이런 이웃들과 어찌 아옹다옹하며 살아가겠는가? 좀 밑지는듯 모자라는 듯 살아가는 것이다. 경험칙에 의하면 그 밑진 것 모자란 것 언젠가는 다 채워 지더라.
에필로그,
그 일이 있은 후 이PD도 최公도 며칠 그 땅 대한 말들을 꺼내지 않는다. 솔직히 그들도 술 기운을 빌려 어려운 얘기를 했을 터이고, 그런 가운데 화끈한 확답을 얻어내긴 했지만 술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라 반신반의 했을 것이다. 며칠 뒤 나는 이PD에게“아니!? 땅을 달라더니 어째 이리 조용합니까?”,“아니!? 그럼 그게 정말이었어요?”,“아니!? 이 양반들이 농담할 걸 해야지 그런 중대한 일을 농담합니까?”사실 오가는 대화도 농담 비슷하게 했다. 그리고 이PD에게, 그날은 내가 돼지 목살을 샀으니 오늘은 최公더러 사라고 하며 기왕 얘기 나온 것이니 그 땅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의 좀 하자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아내의 재가를 득한 덕분에 자신감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이곳에 내려와 얼마되지 않아 집을 짓기 위해 정지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대문 입구가 좁고 구불거려 확장하는 과정에서 약50제곱(15평)m을 마을에 희사 했다.(그러나 결국 등기상 공부에는 남아 있음으로 문제 될 게 없다)
물론 이PD는 신명나 했고, 과연 그날 저녁 6시에 최公 집에서 한 잔 하자는 기별이 왔다. 감격한 나머지 그날 저녁 최公과 부인은 손 두부를 만든다, 목살을 삶는다, 나를 위해 젓갈 넣지 않은 겉절이를 만든다. 몇 순배의 잔이 돌자 나는“최公! 내가 그 땅에 신경 좀 썼습니다.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었지요. 우선은 그 땅에 석축을 쌓느라 돌도 여러 차 샀고, 흙이 여러 차, 거름 또한 수십 포 등등... 하여“세상에 공짜가 없는 것은 최公께서도 익히 아시는 바, 그렇다고 현금으로 계산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소? 내가 지금 흙이 다섯 차 가량 필요하니 흙을 다섯 차 사 주시는 게 어떻겠소?”

옆집 문 선생(경기도某공고교사, 아버지는 지금도 미8군태권도 교관으로 근무하는...)부자는 나를 처음 보는 날 흑색점선까지가 자신들의 땅이라며 주장하기에 측량을 한 후 사실이 그렇다면 돌려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측량을 해보니 오히려 흰 점선까지가 우리 땅이다. 그러나 그곳엔 문 선생네의 소나무와 불루베리 밭이다. 어쩌겠는가. 쌍방 내 땅이라는 것만 인정하고 혹시 문 선생네가 이사를 간다면 그 때 돌려 받는 것으로 구두 약속을 했다. (약 90평)
나의 제안에 최公이 마다할 리 없다. 이PD내외가 증인이 되고 쌍방 입으로(구두) 계약을 맺고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한 통의 전화가 오기에 받아보니“저~ 최XX입니다.지금 댁에 계시지요?”,“아~! 그럼요! 근데 어쩐 일로...”,“지금 곧 흙이 온답니다. 어디다 받지요?”순간 속으로 폭소가 나온다. 세상에~! 나 보다 더 성질 급한 사람도 있었던가? 아무튼 10여 분 뒤 대형 덤프터럭이 굉음을 울리며 서서히 우리 집 문전옥답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다섯 차의 흙을 받은 다음날 바로 나는 최公의 전화 한 통을 다시 받는다.“시간 있으시죠?”,“그렇습니다마는...”,“지금 저랑 면에 가셔서 시유지 포기 및 양도계약 좀 해 주시겠습니까?”,“.......아! 네! 뭐...그러지요”진작 통보를 했으면 샤워라도 하고 얼굴에 구루무라도 바르고 향수도 두어 방울 뿌리는 건데.....

아랫 집 뻥팔이네 역시 내 땅 54평을 점유하고 그곳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농사를 짓고 있다. 이곳은 필요가 있어 돌려 받고 싶었으나 대판 싸움으로 번진 적이 있었지만, 다음날 그 댁 구순에 가까운 어르신이 사과하러 오셔서 사정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에 자신들이 사겠다기에 그렇게 하시오~! 하고 지금까지 유야무야 되어 있다.
아무튼 최公의 그 바지런함 그리고 매사를 일사천리로 해결하는 능력은 타인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이렇게 산골의 다정한 이웃 만들기로 산골의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