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훈
로마史Digest 帝國篇-51-
*2대황제 티베리우스도 외부세계에서 더욱 인정 받았다.

The tribute penny mentioned in the Bible is commonly believed to be a Roman denarius depicting the Emperor Tiberius. 황제 티베리우스 면상이 색여진 1데나리우스짜리 銀貨. 등극하는 황제마다 제국 영내의 기축통화로 금 은 동의 주화를 발행하였다.
서기14년부터 37년, 77세에 사거할 때까지 티베리우스 23년 통치기간 중 일방적으로 보내오는 편지 한 장에 언급된 지시에 따라 정사를 처리 할 수밖에 없이 경시 당해온 원로원에는 시신을 테베레강에 던져버리자는 일부 의원들도 있었다.
그러나 항제의 유체는 로마에 운구되어 5일 후 화장과 함께 皇帝廟에 안장되는 국장이 엄수되었다
BC.44년 원로원 일부 회고주의자들도 카에사르를 암살하고 시신을 테베레강에 띄어바리자는 주장을 했으나 민중은 이를 용납하지 않은 역사가 있다.
티베리우스 사후에 가이우스(별명 칼리굴라(Caligula.작은 군화의 뜻)가 이어받은 제국은 세계의 모든 육지와 바다라 해도 좋을만한 광대한 제국이었다.
일부 사가들은 티베리우스가 새로운 정치를 한 것이 없다고 비평하나 새로운 정치를 안한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우구스투스가 한 시기의 개혁으로 끝낸 것을 티베리우스는 그것을 견고히 다지는 것만으로 제국로마는 다음 누가 이어받더라도 반석 위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유다의 플라톤이라 불릴만큼 유다사회의 대포적 지식인 필론은 속주 이집트에 살았으면서도 위에 잠간 언급하였듯이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황제 티베리우스 사후에 칼리굴라가 승계한 제국이란 세계의 모든 육지와 모든 바다라고 하서 틀리지 않는 광대한 로마제국이었다.
그러므로해서 이 제국에서는 어떤 규모의 <다툼>도 모두 과거의 것으로 화했으나, 그 원인은 공정한 법이 제국 전역에 걸쳐 업정하게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동서를 막론하고 남북 가릴 것 없이 모든 육지와 바다는 로마제국의 이름 아래 조화된 통일체를 형성하고 있다.
제국의 내부에서는 야만인과 문명인이 섞여 살고 정복자는 피정복자와 혼연일체가 되어 양자 함께 소원하는 평화 유지를 위해 각자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일일 생활 현상도 감탄 없이는 발볼 수없다.
축적된 부는 황금이나 은으로된 통화와 다종 다양한 공예품들로 충만하고 제국 전역에 걸친 통상망은 부와 물산의 교류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
군사력도 보병 기병 해군으로 전비되어 제국 내라면 어디에 살든 안전을 보장한다.
그런 의미로 제국은 하나의 통일체인 것이다.
유프라테스江에서부터 라인江까지를 껴안은 제국은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영역가지도 마은대로 다스리는듯하다.
이 모든 것의 특전은 본국 이탈리아에 사는 로마시민만이 향수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인도 그리고 아시아인도 요컨대 帝國民 모두가 향수하고 있는 은전이다.
이만한 상태로 제국을 이어받는 행운이 주어진 황제는 가이우스(칼리굴라)가 처음이었다.
개인 입장이든 제국규모이든 그리고 富이든 권력이든, 번영의 기반이든 무엇 하나 새로
求할 필요가 없다.
이미 존재하고있지 않은가.
행복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해야 할 것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여오는 일뿐이다.--
사회불안의 원인으로 본국 이탈리아에서 일시적이나마 유대인 사회를 추방한 적있는 티베리우스가 자기 死後에 유다인의 한 사람이 이와같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역사저술가이자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19세기 독일 역사가 데오도르 몸젠(Mommsen)의
티베리우스 평은 <로마가 가진 가장 훌륭한 황제의 하나였다>이다.
당대의 위대한 인물은 내부에서보다 외부에서 더욱 인정받는 것이 어쩜 아이로니하게 느껴질 지 모른다.
이유는 유사한 사례로 지금 세계 유수의 식자들에 의한 박정희 평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내부인의 편협에서 오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