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 올립니다.
= 44 회 =
박정희 경제 개발 5 개년 계획 실행 하다 !
경제개발 길목에서의 내용은 과장도 확대도 아닌 있는 그대로 정직한 기록으로 모든 관료들, 오늘날 대한민국의 존재사유를 정의한 것이다. ① 1960 년 미국에서 돌아오다. 당초에 남 덕우 교수는 대학교수를 천직으로 하는 경제학자가 꿈이었다. 결국 교수가 되어 그의 꿈이 실현되고 있었다.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석, 박사 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서강대 이승훈 교수의 추천으로 미국식 교육방식을 실천하는
서강대에 교수가 되었다. 남 교수는 가격 론으로 미시경제학과 경제학설사의 저서를 하고 경제학 대사전 등 편찬에 참여하였다. 2 차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의 허점 강의와 연구에 쫓기는 나날이 계속되는 동안 설상가상으로 나는 점점 정부 일에 말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제 2 차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을 편성하고 각종 개발정책을 밀고 나갈 때로, 이 작업에 교수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의 기획조정실 주관으로
평가교수단이 편성됐다. 정부의 계획과 정책을 평가하는 심사분석회의가 분기별로 개최됐는데 회의에는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했고, 나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박 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평가교수단은 경제개발 5 개년 계획 및 정책에 대한 평가 분기결과[分析結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나도 개발계획 금융정책 등에 관해 몇 차례 보고를 했다. 평가교수단은 제 2 차 5 개년 계획을 평가하게 됐는데,
당시의 계획 편성 기법이란 매우 단순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1962 년 아시아 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태국 방콕에서, 연 계획 편성 기법에 관한 전문가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뒤인지라, 제 2 차 5 개년 계획의 편성방법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거시적[巨視的] 총량계획에 대한 실무자의 설명을 듣다 보니 너무나 단순한 허점이 눈에 띄었다. 계획문서 중에 계획상 정부·민간부문의 투자사업 일람표가 붙어 있었는데
그 리스트의 합계액이 총량계획의 총투자액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계획사업의 합계액이 국내 총투자액과 같다면, 계획 외의 비(非)계획 투자는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계획이나 예측으로 포착할 수 없는 비계획 부문의 투자가 많다.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석상에서 이것을 노골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망설이다, 너무나 기본적인 문제인지라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즉, 총투자는 계획투자와 非계획투자로 양분될 수 있는데 총량계획에서는 비[非]계획투자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것 같다고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실무자가 내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지만“재검토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슬기롭게 넘어갔다. 그 당시 계획 기법수준은 대체로 이런 정도였다. 그러나 그 계획에 열거한 투자사업만 실행하더라도 경제성장 효과는 클 것이니
5 개년 계획은 숫자보다 그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경제발전에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962 년 6 월 9 일 통화개혁을 실시한 후 뚜껑을 열어보니, 과연 음성자금도 화교자금도 얼마 되지 않았다. 결국 예금동결을 해제했고 그에 따라 화폐개혁은‘환’을‘원’으로 바꾸고, 화폐단위를 10 대 1 로 평가 절하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 실패한 화폐개혁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사람은 서울의 모 대학에서
후진국 종속론을 강의해서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교수로 알려졌다. ③ 줄넘기와 이자율 그 후에도 심사분석회의가 가끔 열렸는데, 한번은 금융정책, 특히 이자율의 기능에 관해 대통령 앞에서 보고하게 됐다. 당시에는 이자율이라고 하면, 단순히 은행이 예금주나 융자받은 차주에게 제공하는 대가라고 생각할 뿐 그것이 한 사회의 가용자원 배분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정책 금융 때문에 이자율이 다각화돼 있는 것도 문제였다. 대통령에게 줄넘기 운동을 이자율 수준을 설명 나는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줄넘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로 했다. “가령 일정한 높이로 줄을 매놓고 아이들에게 그것을 뛰어넘게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아이들과 뛰어넘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뉩니다. 높이를 낮추면
좀 더 많은 아이가 줄을 뛰어넘을 것이고, 반대로 높이를 올리면 줄을 넘는 아이가 적어질 것입니다. 즉 줄의 높이에 따라 줄을 통과하는 아이 수가 달라집니다. 이자율의 수준은 이 줄과 마찬가지입니다. 합리적인 기업은 투자사업의 수익률과 이자율을 비교해 전자가 후자보다 높을 때에는 투자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사회 내의 잠재적 투자사업 중에는 현재 이자율의 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업도 있습니다.
이자율의 줄을 낮추면 좀 더 많은 잠재적 후보 사업이 줄을 넘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자율은 일정 기간에 그 사회에서 실현할 수 있는 투자사업의 총량을 결정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각종 투자사업의 내용이 결정되면, 투자 사업에 쓰이는 기계류, 원자재, 노동 등 생산요소의 사용량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이자율은 투자와 고용, 경기를 조절하는 중요한 정책변수가 됩니다. 그런데 이자율의 줄 높이를 하나로 하지 않고
낮은 줄과 높은 줄을 만들어 놓으면 수익성이 낮은 사업이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제치고 낮은 줄을 넘게 되어 전체적으로 보면 한 사회의 투자효율을 낮추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높이가 낮은 줄로 기업이 몰려오면. 그들의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문지기가 있어야 하고 기업과 문지기가 접촉하는 가운데 부정과 부패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자율은 시장에서 자금수급을 반영해 자율적으로 결정되도록 하고
이자율 구조도 가급적 단순화하는 것이 투자의 효율[投資의 效率]을 높이고, 부정부패[不正腐敗]를 적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이 너무나 원론적인 교수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장경제[市場經濟]의 메커니즘에 합리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대통령에게 이해시키려 했던 것이다. 1980 년에 금리구조의 정책이 변하기 시작. 그래서 당시의 금리구조는 매우 복잡했고, 그 폐단을 인식해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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