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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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용인술[用人術]과 인화력의 장점
장개석과 만남 장개석은 이웃나라 젊은 혁명지도자에게 “지도자란 사람을 잘 써야 합니다. 사람을 쓸 때는 반드시 주위보다는 먼 곳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묘하게도 국가적으로 가치 있는 인재는 꼭꼭 숨어 있어 찾기가 힘듭니다. 나라 일이란 역시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훌륭한 인재는 오래 일할수록 유익하니 그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여건을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알겠습니다. 아시아에서는 국민을 다스리려면 지도자는 권위[權威]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권위를 함부로 하여 칼을 뽑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칼의 권위란 뽑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꽂혀 있는 상태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지요. 지도자의 얼굴엔 항상 덕망이 넘쳐야 하며, 사생활도 깨끗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참된 반공은 총칼로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한 복리 증진이 더 효과적이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장개석 총통으로부터 많은 배움을 받았을 것이다. 혁명지도자 대통령인 박정희 업적의 시발은 5 개년 경제계획이다. 1 차 5 개년 경제계획 동안 3,400 개의 공장이 건설되었다. 1968 년 1 월 21 일의 북괴 124 군 부대원들의 청와대 습격사건으로, 각 군 참모총장들은 강력하게 북진[北進]을 건의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우리 단독으로 ?”“예, 할 수 있습니다.”
국방장관은, 따져봐야겠습니다. 문제는 공군력입니다.” 공군참모총장이 일어나 대통령에게“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주력은 F - 5A 입니다. 요격기로서 공격 전술에 필요한 폭격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설사 폭격을 한다 해도 제공권이 평양에서 원산 이상을 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월남에서 미 공군이 사용하는 F - 4D 팬텀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미국이 일본 등 동맹국에 이 기종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핵폭탄이 4 톤입니다. 팬텀 무장능력 정도는 되어야 충분합니다.”“북한에 우리가 핵폭탄을 ? 국방장관, 그것 구해 올 수 있겠소.”“각하, 미국이 우리를 배신한 마당에 우리가 미국을 꽉 조이면 가능할 것입니다.”“한번 해보자! 북[北]을 우리가 때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월남전에서 구정 공세 때에도 우리 국군에게는 별 피해가 없었다. 국방장관은 대통령에게 보고 중, 대통령은 우리 국군 1 개 사단하고
미군 1 개 사단하고 붙으면, 우리 국군이 이길 것이라고 장담했다. 경부 고속도로[高速道路]기공식[起工式]1968 년 2 월 1 일. 박정희 대통령은 무장간첩 등 긴장된 시기에 서울, 수원 고속도로 건설공사 기공식에 참석했다. 진행방식은 참으로 혁명정부의 방식이다. 방식은 비상[非常]수단이다. 육사 8 기생인 살아있는 시방서 건설부차관 최종성의 증언이다. 주원 건설장관을 비롯하여 직원들은 가슴 속에 사명감[使命感]으로
정신무장[精神武裝]을 하였다. 박 대통령은 기공식 연설에서‘싸우면서 건설하자’구호를 제시했다. 박 대통령의 업적 중에 북의 남침야욕을 멈추게 한 것은 250 만의 향토예비군 창군[創軍]이다. 진정으로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모인 것이다. 향토예비군 창군은‘제 2 의 민족군단의 창군’이다. 율곡 10 만 양병론[養兵論]에 합당한 역사적 결단이다. 아마도 ! 미래의 천 년 안에는 이러한 위대한 결단은 없을 것이다.
결국 미국의 원조 1 억 달러로 팬텀 1 개 대대 18 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 미 방위조약을 수정해서 남침 시 즉각 개입으로 하였다. 존슨 대통령은 청와대 기습보고를 받고 미군이 직접 조사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한국전자공업[韓国 電子工業]의 원년[元年] 한국 전자공업의 가정교사 김 원희 박사는 1960 년 후반부터 10 년간 박 대통령의 전자공업 자문 역할을 했다. 김 박사는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타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전자공학계의 피타고라스 정리라 할 정도로 유명한‘브루지 정리’의 예외를 발견하여 이를 박사논문으로 발표했다. 박사논문은 전자회로 설계에 중요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1958 년부터 컬럼비아 대 전자공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 교수와 대통령과의 관계는 대통령이 전자공업 분야에 과학자를 찾고 있던 차에, 대통령에게 추천된 것이다. 1967 년 8 월. 대통령의 초청으로
면담이 이루어졌다. 9 월 4 일 서울에 도착한, 김 박사는 한국의 전기기계공업 실정을 들었다. 전기기계공업은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혹은 전자산업, 전자공업이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김 박사에 의하여, 전자산업, 전자공업이란 용어가 사용되게 되었으며 일본도 같이 사용되게 되었다. 당시 박 충훈 상공장관은 대통령 뜻이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우리의 대표적인 금성, 삼성은 원시적 수준이었다.
조잡한 모조품이었다. 김 박사는 국내 전자분야에 대한 발전방향을 보고했다. 2 시간 동안 대통령은 꼼짝하지 않고 경청했다. 대통령의 진지한 자세에 김 박사도 감동을 받았다. 대통령은“우리나라 전자공업을 도와주시오.”“저 혼자 힘으로는 안 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돈은 얼마나 들어가야 합니까?”“20만 달러 정도 들어갑니다. 우선 10 만 달러를 주십시오.” 9 월말 우선 10 만 달러가 송금되었다.
김 박사는 매년 3 ~ 4 차례 방문하면서 열심히 일하였다. 저녁 방송에 전자공업 육성 발표가 있었다. 가난한 한국을 부자나라로 만드는 박 대통령의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1968 년 김 박사는 미국의 유수한 전자공업 권위자들을 대동하고, 한국을 방문하여 대통령하고도 면담이 이루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 박사 귀국 후에 그의 애국적 노고에 감사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 끝 부분에는‘귀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축원 합니다’
하는 구절도 있었다. 아마도 김 박사의 인품이 고결한 모양이다. 대통령의 이러한 서신을 받고 국가에 성심[誠心]을 다하지 않을 교수가 있었겠는가? 당시의 한국 전자산업의 성공은 대통령, 김기형 박사, 최 형섭 KIST 소장, 신 동식 수석비서관 등의 참여로 대단한 콤비네이션의 팀워크이다. 아마도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시 집현전의 집사들과의 팀워크와 리더십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다. 이런 것은 역대 대통령들이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