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올립니다.
= 39 회 =
부끄럼 타는 영웅 눈물 많은 초인 박정희
자주 독립된 한국의 창건, 그것이 본인의 소망의 전부다. 본인은 한 마디로 서민 속에서 자라고 일하고, 그 “서민 속에서 생이 끝나기를 염원 한다” 이것은 인간 박정희의 유언 같은 다짐이 되었다. 소박한 정신의 소유자는 잡념과 위선을 멀리하고, 사물을 실용적으로 정직하게 본다. 박정희의 주체성의 핵심은 사실에 근거한 실사구시[實事求是]정신이다. 박정희는 파란만장의 시대를 헤쳐 가면서, 영욕[栄辱]과
청독[清濁]을 함께 들이마셨던 사람이다. 부끄럼 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초인, 그리고 소박한 서민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애환을 느낄 줄 알고, 그들의 숨결을 읽을 줄 아는 토종 한국인이다. 민족의 한[恨]을 푼 혁명가[革命家]이다. 박정희는 인권 탄압자[彈壓者]가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획기적으로 인권 신장에 기여한 혁명가이다. 인권 개념의 핵심인 빈곤으로부터 백성의 해방자[解放者]이다.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세계가 본받아야 할, 아시아 용[竜]은 민주화 꾼들에 의하여, I M F 를 거쳐 지금은 너무나 엉망이 되고 말았다. 부국강병책[富国強兵策]은 오고 간 데가 없다. 60 만 대군은 이미 정신무장 해제상태[解除状態]이다. 60 만 대군이 적을 분간 못하는 색맹군[色盲軍]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주적이 없으면, 군이 왜? 필요한가? 참으로 내일의 조국이 걱정스럽다. 청와대 수영장에 물을 넣으면 돈이 많이 든다.
배드민턴이나 치자! 후임자들은 청와대를 꼴불견으로 만들어 외국 원수들이 속으로 웃을 것이다. 박정희가 사범학교에 합격은 했는데, 돈이 없으니 이를 어쩌나! 이러한 가정환경은 가난 그 자체였다. 학비가 없어서 대학을 못가니 육사를 간 것은 아닌지! 대구사범 5 학년 교우회지에 실린 시 = 대자연 정원에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꽃보다도 황야의 한구석에 수줍게 피어 있는 이름 없는 한 송이 들꽃이 보다 기품 있고 아름답다.
아름답게 장식한 귀부인보다도 명예의 노예가 된 영웅보다도 태양을 등에 지고 대지를 일구는 농부가 보다 고귀하고 아름답다. 하루를 지내더라도 저 태양처럼 하룻밤을 살더라도 저 파도처럼, 느긋하게 한가하게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고 싶다. 이 시에는 강자 보다 약자를, 장미보다 이름 없는 들꽃, 대지를 일구는 농부, 가는 날을 보내고 오는 날을 맞고 싶다. =
이는 박정희의 불타는 역사의 의식을 잠깐 휴식을 즐기는 한 순간인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0 년 대구사범 동기인 권상하에게, 기명유신[其命維新]이란 붓글씨를 써주었다. 대구사범시절 염 정권 선생님이 시경[詩經]에 나오는 주수구방 기명유신(周雖旧邦 其命維新) 周 나라는 비록 오래 되었지만 개혁[改革]으로써, 천명[天命]을 새롭게 했다’ 고 가르친 것이다. 중국 서쪽 변두리
의 한 작은 나라이던, 주의 무왕[武王]이 백이숙제의 소승적 의리 론을 꺾고,
군대를 일으켜 은의 주왕을 죽이고 왕조를 창시하여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한다. 하늘은 은에 내렸던 천명을 왕들의 실정으로 주[周]에 넘어갔다. 이것이 천명을 바꾼 즉, 혁명[革命]이다. 박 대통령은 동양적 혁명논리에 전통성을 모색하고 나아가 제 2 의 혁명인 10 월 유신을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도 시경의 글에서 유래된 것이다. 일본을 탈바꿈시킨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 유신이라 한 것이다.
대구사범 교장 히라야마는 ‘내가 책임지고 가르치는 여러분은 소인잡배[小人 雜輩]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을 대인으로 교육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소인은 한가하면 불선을 저지르지만, 대인은 한가하더라도 무엇인가를 뚜렷하게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군자[君子]입니다. 여러분은 군자입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십시오’ 1949 년 12 월 17 일. '육군 정보 연말 종합보고서에는‘ 1950 년 봄을 계기로 하여
북의 적정에 급진적인 변화가 예기된다. 북괴는 전 기능을 동원하여 전쟁준비를 갖추고 나면, 38 도선 일대에 걸쳐 전면 공격을 취할 기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된 다’고 이 판단서의 총론 부분은 박정희가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때, 군 고위층은 남침 보고서만 올라가면 짜증을 냈다고 한다. 아마도 요사이 같은 분위기였는지 모른다. 육군 대령이 살 집이 없어서 부관 원 병오 누나 집에 신세를 져야 하는 경우는
박정희가 얼마나 주변머리가 없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지나친 청렴의 본보기다. 박정희는 좀처럼 자신의 청렴성을 드러내거나 부하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나 강한 자의식[自意識]을 갖고 있음은 확실하다. 부패한 주변 상급자들이 그의 약점이 없는 것을 어렵게 여겼다. 그는 부하들을 계급으로서 통솔이 아니라, 청렴[清廉]이었다. 연탄이 모자라 한 방에 온 가족이 붙어서 겨울을 지내기도 하였다. 하루는 어느 부하가
연탄 한 차를 신당동 자택으로 보냈다. 이를 본 박정희는 화를 냈다.‘이 놈아! 어디서 뇌물을 받아먹고 이런 짓을 하나? 내일 군법회의에 넘기겠어’ 호통을 쳤다. 혁명지도자는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참모였던 박 경원은‘그 분은 총[銃]으로 혁명[革命]한 것이 아니라, 인격[人格]으로 혁명[革命]한 사람이다’ 그가 혁명군을 조직할 때에 직할부대 병력이 단 한 명도 없는 2 군 부 사령관 이였다.
박 장군은 5 ․ 16 영시에 목숨을 건, 혁명 출발에 4 대 독자 부관 권 천식을 집으로 가라고 했다. "자네는 살아" 죽어서는 안 돼 ! 그리고 잘못되면, 우리 가족도 돌봐 주어야 한 다’ 명령했다. 군사혁명은 실패하면 총살이다. 생명을 걸고 하는 사나이의 춤판이다. 목숨을 걸고, 동참한 수백 명의 혁명동지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 이러한 혁명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역사에
제 2 의 박정희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걸고, 혁명을 할 만한 사나이들이 없기 때문이다.‘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隠忍自重] 하던 군부는 드디어 금조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 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군사혁명위원회[軍事革命委員会]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