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올립니다.
= 36회 =
역사는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태 총각으로 놔둔 여성분들께 감사 합니다”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지만아”! 부디 행복하게 살아다오. 그래야 나도 저승 가서 박 대통령과 웃는 얼굴로 막걸리 잔을 들 수 있지!” 영일만 사나이들 포스코는 사람들의 작품이다. 숱한 인재들의 피와 땀으로 포스코 신화[神話]는 탄생했다.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 대한 중석에서 만난 인재들! 우리 모두는 절묘한 콤비를 이루었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모두들 애국자[愛國者]들이다. 포철의 혼[魂]은 애국혼[愛國魂]의 걸작품[傑作品]이다. 지난 40 년. 우리 세대는 세계 11 위 경제대국을 창조했다. 5 천 년의 기적[奇蹟]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좌우명[座右銘]을 소개한다. 무엇이든지 세계 최고가 되자. 절대적 절망[絶對的 絶望]은 없다. 짧은 인생을 영원히 조국에 10 년 후, 자기 모습을 설계하라! 역사는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자의 몫임을 기억하라.
역자 주[註] 민족[民族]의 가난[家難]을 극복[克服]하고, 선진국을 창조한 박정희 대통령의 유일한 혈육인, 지만 군이 결혼식을 올렸다. 인간 박태준은 인간 박정희에 대한 마지막 짐을 벗은 기분일 것이다.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도 너무나 기뻐하실 것이다. 특히 지만 군의 어머님인 영부인 육영수 여사님은 너무나 기뻐하실 것이다. 박 대통령은 박태준 회장에게 ‘임자! 정말 고맙네! 우리 다시 만나면,
막걸리 한 잔 하세!’ 했을 것이다. 인간[人間] 박태준은 박정희 장군 다음으로 한국인으로써, 20세기를 멋지게 산 역사인[歷史人]이 된 것이다. 누군가 노래를 불렀다. ‘찔레꽃 향기는 슬프다’ 고, 그러나 찔레꽃 향기는 꿀 같이 진한 것이다. 드디어 2005 년 9 월 12 일. 지만 군이 박정희 대통령의 손자를 생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늘에 박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물론 박태준 회장은
너무나 기뻐서 당장 잔치라도 할 판일 것이다. 더욱이 참으로 다행인 것은 지만 군이 박정희 대통령의 대를 이을 손자를 출생시킨 것이다. 민족의 경사이다. 한 민족사[民族史]에는 역사에 위대한 불멸의 위업을 남긴다는 것은 본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하늘의 천명[天命]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 박정희, 인간 박태준은 하늘의 천명을 받아 천명[天命]을 실행한 위인들이다. 제 22 장. 임자, 자네가 사령관[司令官]이 아닌가!
김 용환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 우리나라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온 국민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정체였다. 결코 기적[奇蹟]이 아니다. 나는 또 “하나의 동인[動因]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卓越]한 리더십”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 분의 특이한 리더십, 철학[哲學]과 열정[熱情]과 강력[强力]한 추진력[推進力]이 오늘날의 우리나라 경제를 일궈낸 동인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김 용환 씨는 18 년간 박 대통령의 경제개발시대에 그 중심에서 청춘을 바쳤으며, 더욱이 근래 외환위기[外換危機]때, 국가의 부름으로 비상경제대책 위원장을 맡기도 한다. 금리 현실화 조치[措置] 금리와 환율 현실화는 우리나라가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하는 기반 정책[基盤構築]조치다.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하고, 내자동원을 극대화[ 極大化]하기 위해, 금리와 환율을 시장가격 수준으로 접근하는 조치이다. 대출 금리는 16 %에서
24 ~ 25%, 예금금리는 12% 에서 30% 로 인상 조치하였다. 재무부 이재과장으로 장기영 부총리 밑에서 실무총괄을 맡았다. 시장다운 시장 기능이 없었던, 그 시절에 미국원조에만 절대적인 의존에서 최소한 그와 맞먹는 내자[內資]의 동원[動員]이 필요[必要]했고, 금융시장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하고, 사채시장의 지하자본을 양성화하여 경제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금융시장의 기능을 정상화 할 필요가 금리현실화 조치의 핵심이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 1965 년 9 월 29 일 오전 10 시에 대통령을 모시고, 고위정책회의[高位政策會議]에서 브리핑하는 주역[主役]이 되었다. 성공은 5 대 5 이다. 참석자들은 확신을 못하고 부정적[否定的]이다. 파워 엘리트들이 불투명[不透明]한 태도를 취한다. 박 대통령도 준비는 잘 되었지만, 만전[萬全]을 기하는 의미로, 경제과학심의회[經濟科學審議會]에서 다시 한 번 검토를 하여,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리면서
유보 쪽으로 결론을 냈다. 1965 년 9 월 29 일. 유보로 발표했다. 장기영 부총리로부터 빨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청와대로 다시 들어가자는 것이다. 6인 비상회의[非常會議]이다. 박 대통령과 백 남억, 김성곤, 부총리, 재무차관 그리고 본인이다. 대통령은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임자 의견이 가장 중요한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금리를 시장 실세에 접근시켜 현실화하자는 데는 의견이 없지 않습니다.
문제[問題]는 누가 책임[責任]을 지고 추진[推進]하여 마무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파격적[破格的]인 정책[政策]을 단행할 때에는 반드시 부작용[副作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는 파워 엘리트에 대한 불만이다. 금리[金利] 현실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박 대통령은 또 한 번 내 무릎을 치더니 “맞아,
임자 의견이 맞아. 임자가 그런 결심만 했다면, 당초 계획대로 오늘밤 영[零]시를 기해 단행하지.” 결론을 내렸다. 예금이자를 배로 인상하고(정기예금 12 ~ 16%에서 30%까지) 정기적금은 10% 에서 30% 로 인상, 대출 금리는 16% 에서 26% 로 인상하게 되었다. 금리현실화 조치는 일대 혁명적 조치이다. 즉, 금리혁명[金利 革命]인 것이다. 금리현실화 실행 첫날이 9 월 30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생신일이 음력 9 월 30 일이다.
그 날이 양력으로 생신일이다. 대통령은 서독 뤼브케 대통령이 박 대통령의 생일축하로 선물한 백포도주를 한 잔 하자는 것이다. 이때, 박 대통령이 말석에 앉은 나를 불러 ‘이재과장, 이리 나와서 한 잔 받아’ 하시면서, 첫잔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은 한 과장을 국가중요정책 결정에 있어, 자네가 총사령관이 아닌가! 하고 힘을 심어주는 결정은 참으로 혁명가 다 운 결단이다. 대통령 주제 하에 일단 부결 된 것을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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