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 33 회 =
제철 보국에서 교육보국 포항 공대 설립하다!
퇴짜를 받고 제철장학회를 만들었다. 이 돈이 종자돈으로 유치원, 중고등학교 나아가 포항공대를 설립하게 되었다. 제철보국에서 교육보국으로 이어진 것이다. 포항공대 초대 입학생은 280 점 이상만 선발하기로 하고, 안 오면 교수들만 연구하기로 하였다. 결국 87 년 3 월 입학생들이 모여 성공하였다. 초대 총장인 김호길 박사의 강력한 요구인, 방사광가속기 설립도 승인했다. 이 기계설립 부지는 18 만 9 천 평을 확보하였다.
준공식에는 김호길 총장은 이승에서, 나는 TV로 보았을 것이다. 지난 8 월 노 대통령이 제 4 세대 설립을 약속했다고 한다. 앞으로 일본, 독일, 미국과 경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김호길 박사 1985 년 5 월 나는 캘리포니아 공대 칼 택 대학 부총장에게 21 세기를 준비하기 위하여, 한국에 칼 택 같은 공대를 설립하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포철은 대학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칼 택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산 학 연[産, 學, 硏]의 협조체제가 모범적인 것으로 포항공대의 모델로 생각했다. 오스트리아 레호 벤 공대, 스위스 취리히 공대, 독일 아혠 공대, 베를린 공대, 영국 임폐리얼 공대, 버밍엄 공대, 세필드 공대, 미국 MIT, 일리노이 공대, 버클리 공대, 이상의 여러 공대[工大] 중, 나는 칼 택을 찍었다. 부총장은“포스코가 정부 소유라면 정권이 바뀌어도 당신이 포스코 리더로 남아야 대학을 키울 수 있을 것이 아니냐?
그것이 보장되느냐?”“하느님이 포항공대를 세울 시간은 허락하실 것으로 믿는 다” 그러나 93 년 포철에서 쫓겨날 때, 다행히 포항공대는 막 본 궤도에 진입해 있었다. 유능한 총장을 물색 중, 김호길 박사가 등장한다. 김 박사는 미국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전자고리가속기 권위자이다. 결국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김 박사는 처음에는 포항제철의 포항공대이나 후에는 포항공대의 포항제철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 운영이나 교수 임용은 자기에게 위임[委任]하라는 조건이다. 나는 무조건 김호길을 잡아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포항공대 운영은 전적으로, 김 박사에게 위임되었다. 세계적인 교수들을 스카우트 하는데, 혹시 회장이 쪼인트를 깔 거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 대공 상무[常務]가 회장에게 이런 농담까지 주고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바로 이거야 하고 했다. 나는 초빙교수들의 부인들을 초청하고, 최고의 대우를 약속했다.
첫 신입생 자격을 280 점 이상으로 하고 만약에 지망생이 부족하면, 교수 중심 대학으로 하는 배수[背水]의 진을 쳤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하고, 87 년 3 월에 첫 입학식을 가졌다. 나는 신입생들에게 감사했다. 나는 김호길 박사에게, 약속한 방사광 가속기[放射光加速機] 설립을 촉진했다. 포항제철은 조상의 핏 값으로 일으킨 포철의 아들 포항공대이다. 방사광가속기[放射光加速機]의 부지는 18 만 9 천 평 터를 넓게 잡았다.
내가 유럽에서 유랑생활 중, 94 년 4 월에 김호길 박사 서거 소식을 들었다. 12 월에는 우리 손으로 만든 세계 5 번째 방사광가속기를 준공시켰다.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과학의 총아인 방사광가속기는 사용예약이 밀리고 있고, 지난 8 월 노무현 대통령이 제 4 세대 가속기 설립을 약속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다. 미쓰비시에서 나에게, 지난 20 년 동안 거래하는 동안 감사하다는 뜻으로
미쓰비시 이사회에서 나에게 준, 거양해운 소유를 포항공대 재단의 발전기금으로 하였다. 이것을 김만제 회장이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차관의 95 %를 상환할 때까지 제 3 자 양도를 금지한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대우, 삼성에서 만든 15 ~ 20 만 톤 10 척을 소유하고, 20% 정도 상환 중이었다. 나는 미쓰비스 사람들 보기에 민망했다. 결국 95 년 3 월 한진으로 넘어갔다. 나는 한시 빨리 포항공대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할 뿐이다. 나는 6 ․ 25 남침전쟁에서 수없는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내 가슴에는 무공훈장이 몇 개나 걸렸다. 조국수호에 목숨 바친 수많은 전우들이 항시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나는 가끔 박정희 장군과 술잔을 나누며 부패[腐敗]와 조국[祖國]의 빈곤[貧困]을 안주 삼아 울분을 달랬다. 7 0 년 2 월 나는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데, 대통령이 비서실장과 경제수석에게 나가라고 하였다.
보고는 무슨 보고, 그래 순조롭게 돼 가나?” 나는 설비 구매 애로사항을 보고하자, 대통령은 나의 건의에 대하여 놀라운 결정을 하였다. 메모지 왼쪽 모서리에 친필서명으로 무언가를 쓰면서 “이제 어려울 때마다 번거롭게 나를 찾아올 필요가 없네. 앞으로 이걸 보여 주면서, 소신껏 밀고 나가게?” 무한한 신뢰의 표시다. 나의 책임감도 커졌다. 이것을 포철직원들은 종이 마패’라고 부르는데, 나는 이것을 한 번도 내보인 적이 없다.
나는 대통령 서거 직후, 포스코의 역사 자료로 보관해 달라면서 공개했다. 아카자와 고로 1969 년 9 월. 일본은 포철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알기 위하여, 경제기획청[經濟企劃廳] 조정국장 아카자와 쇼이치를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을 파견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특별열차를 이용했다. 현지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모래벌판이다. 무[無]에서 시작하는 현장이다. 일본으로 돌아간 아카자와는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후에 글을 통하여, 박태준이 지휘하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하고, 그는 박태준은 솔직하고 제철에 목숨까지 바칠 제철의지를 확인했다고 기술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포스코는 제 1 고로를 아카자와 고로라고 부른다. 16 년 뒤에, 한일합동경제위원회에서 양측 대표로서 눈물을 글썽이는 그를 껴안았다. 그는 영원한 포철의 은인이며, 한국제철의 은인이다. 아리가 단장 아리가는 正정직[正直]한 인재다.
1억 달러의 거래가 양심적으로 일하는 브로커들에게 눈에 가시다. 나는 신일본제철[新日本製鐵]의 이니야마 사장에게, 그의 유임을 건의하여 계속 일하게 했다. 나는 포철을 1 천만 톤으로 광양 제철소는 2 천만 톤으로 구상하고 준비하였다. 분노의 지휘봉 70 년 4 월 1 일 오후 3 시, 박 대통령을 모시고 김 학열 부총리 그리고 박태준 세 사람이 기공식 버튼을 눌렀다. 대통령은 공업국가 건설에 선행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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