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 32 회 =
박태준이가 기업인으로서 존경한 삼성 이병철
동분서주[東奔西走]한 사실은 역사에 기록되어야 할 사실들이다. 그리고 박태준을 통하여 삼성 이병철 회장의 기업철학인 보국입국[報國立國]은 우리 모든 기업인들이 본받아야 할 국민적 의무인 것이다. 오늘날 국가적 어려움을 당하자,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을 그리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참으로 중요한 증언이 있다. 김대중의 역사적 결론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을 먼저 생각했고, 김대중은 민주화를 말했지만,
이는 순서의 차이일 뿐이다. 박태준은 삼성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살아있는 경영교과서라고 극찬을 받은 그 경영의 핵심은 초지일관 원칙을 유지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본인의 경영술의 능력은 평소 인재를 눈여겨 본, 인재등용의 인간 경영이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눈여겨 본 박태준을 중용한 예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박 태준은 혁명 후, 유럽 순방 시에 이탈리아 대사로 있던 이종찬 장군으로부터 그가 최고회의를 떠나던 날,
박태준에게 부디 군으로 돌아가 군을 잘 지켜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편지로 보낸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시 참 군인[軍人] 이종찬 장군은 박정희 장군이 군사혁명으로 들떠 있는 군의 정신무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인물 즉, 다음 차세대 군 지휘자로 본 것일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혁명당일 박태준을 불참시킨 이유를 ‘당신은 혁명이 실패할 경우, 군을 이끌 군인으로 생각했다’ 고 본인에게 말하였다. 결국 박태준은
박정희 대통령의 후임자 중 한 사람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짐작이 가는 것이다. 박태준의 일생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에 철학의 소유자이다. 오늘날 오나가나 모두가 나라 걱정이다. 그 나라 걱정의 정도가 보통을 넘는다.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설마 설마 하다가 어찌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오죽하면 나라의 원로들이 나섰겠는가? 특히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나섰다. 특히 이 시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이신, 김수환 추기경의 나라 걱정은 대단하시다. 국보법 폐지는 아직 이르다. 젊은 신부들이 내 이름을 도용했다. 북한은 아직 믿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이 급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추기경은 요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기도를 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안 될 상황으로 국가와 국민이 어디로 가느냐? 결국 하느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이다.
그러나 모두가 귀를 틀어막고 못들은 척한다. 추기경은 정부 측에 말로만 하지 말고, 의지를 보여 줄 것을 촉구해 달라고까지 하였다. 불교계 총무원장도‘세계인이 뭐라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우리처럼 분단과 설움을 겪지 않은 것이다. 국민을 지키고 국민을 편안하게 이끄는 것이 정치다.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한국 현실에 맞는 한국식 민주주의가 더욱 중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외침을 많이 받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법도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칼도 과일을 깎으면 과도이고, 식당에서 사용하면 식도가 되고 살인에 쓰면 살인 도구가 된다. 국보법을 인권유린에 안 쓰면 되지 않겠느냐? 호텔을 부수고 화장실을 만든다면, 호텔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화장실이다’ 라고 하였다. 법정 스님은 경제문제도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고 투자도, 돈 있는 사람이 재미가 있어야 하는 법임을 충고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참으로 나라 걱정이 큰일이다. 우리 모두 나라 걱정을 제대로 하자. 나라가 망한 뒤, 강남 아파트 100 평짜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김 영삼과 대결[對決] 1992 년 10 월 2 일 나는 25 년의 포스코 대역사[大歷史]를 마무리한다. 연산 2.100 만 톤, 조강[粗鋼] 생산체제를 갖춘 것이다. 기념식을 갖고 다음 날 국립묘지에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당신과 아주 오래된 약속을 마침내 지켜냈다는 보고를 올렸다.
나는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곧 바로 세 장의 사표를 썼다. 회장직과 민자당 최고위원직, 김 영삼 선거대책위원장 직[職]이다. 나는 25 년간의 대역사의 준공식에도 오지 않았던 김영삼이 광양제철소로 달려와 4 시간이나 강요하는 선거대책위원장 직[職]을 거절했다. 나는 결심했다. 2 년 동안 김영삼을 관찰했다. 그의 식견을 다 알게 되었다. 볼 것 안 볼 것 다 보았다. 나는대선[大選]을 앞두고 해외출장을 떠났다.
여기서 김 영삼에 대한 인물 평가의 본뜻은 볼 것 다 보았다고 했다. 그때 김영삼은 박태준 회장에게 다음은 당신이라고 하면서 대책 본부장을 강요했다. 그러나 당신은 대통령 감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리라.! 결국은 김영삼은 국가부도를 내고 말았다. 월남과 미얀마에서는 모두 국가 수뇌들이 마중 나왔다. 1993 년 3 월 빈손으로 일본에 도착하니, 불모지대 소설의 주인공 세지마가 나를 맞아주었다.
그는 일본 대본영[大本營] 참모이자, 만주 관동군[關東軍]에서 활동하다가 러시아 군에 포로가 되어, 10 년 유형생활을 하고 귀국하여 일본 종합상사[綜合商社]를 이끈 발군의 경제인이자, 막후에서 일본 최고의 전략가[戰略家]로 활동해 왔다. 그런 세지마가 나를 도쿄 대 부속병원 아오야마 병원에 입원을 시켜주었다. 나는 1980 년대 제 2 제철 건설을 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나의 강한 의지력만 믿고 버티다가 유서를 쓰고,
2001 년 7 월 대수술을 받고 살아났다. 다행히 나는 유서를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 나는 9 ․ 11 뉴욕의 테러를 직접 보았다. 2002 년 1 월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박지원이 마중 나왔다. 나는 그에게 나도 한때 소통령[小統領] 소리를 들었다. 당신 소통령[小統領]하려면, 깨끗한 처신[處身]을 하라고 하였다. 숲 속의 주택단지 68 년 11 월. 사원주택 용지 20 만 평을 매입 하였다. 포항 주택단지는 50%,
광양 주택단지는 65% 가 녹지대이다. 더욱이 군에서 두 개의 무공훈장까지 받은 김 수용이 일본에서 도쿄 황궁[皇宮]에 소나무를 심은 사람으로, 그는 자기 돈을 써 가며 도왔다. 92 년 여름 모스크바대학 사도브니치 총장이 숲 속에 예쁜 주택들을 보고, 빅토르 총장은 눈시울을 붉히며‘레닌 동지가 추구한 사회주의 이상향이 포스코에서 실현되었군요!’교육보국[敎育報國] 나는 6 천만 원 리베이트 받은 것을 대통령에게 내밀다가, = 다음에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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