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 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 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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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민주적인 통치철학을 모르면서
후인[後人]들은 일인 독재라 하는가!
은행현황[銀行現況]을 파악하는데 1 년은 걸린다. 남 덕우 장관은 처음 취임 후, 금융과 세정 부정부패를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막막했다고 술회하였다. 그 계획의 대상은 아마도 이조 600 년부터, 더 오래된 부정부패 뿌리다. 더욱이 우리 마음대로 하지도 못 한다. 미국이나 I M F 에 승인을 받는 문제도 어려운 문제이다. 은행원이 행장이 되려면, 30 년을 자기 은행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한다. 행원이 임원이 되려면,
빨라야 20 년이다. 임원에서 전무까지 10 년은 족히 걸린다. 결국은 행원이 행장이 되려면, 30 년이 걸리는데 해당은행과 30 년을 동고동락한 사람 이상, 적격한 은행장 감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면 돌파[正面突破] 기자들에게 현실을 설명하고 협조를 호소하였다. 각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 하여는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대통령은 장관 ! 그렇게 하시요. 임기 만료 은행장을 전원 교체하였다. 목적은 은행 자율화이다.
최고 국가 통치자의 가장 큰 고민은 부정부패다. 각하! 앞으로 재정위원장의 요구를 모두 거절하겠습니다. 소신대로 하라! 이러한 대화가 소위 개발독제시대라고 헐 뜻 던 그 시대에, 대통령과 재무부장관의 국정의사결정 방법이었다. 남장관은 경제개발 계획을 1.2 차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1970 년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고, 1971 년에 10 억 달러를 돌파하는 경제성장을 뒷받침 하였다. 월남전 이후, 자주 국방으로
무기 국산화 율곡사업을 추진하고, 제 2 의 경제혁명으로 통칭되는 8.3 조치 다음으로 중화학공업을 적극 육성하기 시작하였다. 박대통령은 정치는 내가 맡은 것이나, 임자들은 경제개발에 전념하시오! 라는 대통령의 말에 힘을 얻어, 그러면서 진퇴유곡에 빠지면 대통령으로서 책임감과 결단력에 탄복하기도 했다고 한다. 즉 국가 통치자로서 통치력에 경탄한 것이다. 자주국방 그리고 중화화학공업 결국 I M F 의 승인을 받아 실천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역사적 과정을! 조국근대화, 자주국방, 자립경제를 향한 그 시대“저축은 국력이다”라는 박대통령의 통치시절이다. 박대통령 통치시절은 민족의 신명 나던 시대였다. 당시 나는 은행원이었다. 장기영경제부총리는 매월 25 일을 저축의 날로 정하고, 은행원들을 모아 놓고 저축은 국력이라는 깃발 아래, 궐기대회를 했다. 장기영 부총리는 은행은 고장 난 기업을 수리하는 병원이고, 은행원들은
병든 기업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기업은 중병이 들면 주사를 놓고, 수술하는 내과 외과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미국의 철부지 케네디는 혁명을 이해 못하고, 박정희 혁명정부에 경제 원조를 거부했다. 그래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들을 파견하고,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4,000 만 달러를 빌리고, 더욱이 박대통령은 서독 애르하르트 수상과는 서독 라인강의 경제기적에 경험을 전수하기도 했다.
저축은 국력! 국가의 자원 중 핵심은 돈이다. 돈은 모든 것의 시작이고, 해결하는 원천이다. 박대통령은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면서,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자기의 정치적 목적의 정당성을 하늘에 호소한 것이 박대통령에 근대화의 핵심 철학이다. 높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지혜가 있어도, 별까지 도달하는 방법에는 엄청난 돈이 들아 간다.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공염불이다. 남 총리는 박대통령의 별 따는 것에 대한
돈을 만든 사람이다. 돈은 투자, 생산[生産] 소비의 과정이 경제의 기본 시스템이다. 대통령은 “저축은 국력”이라는 휘호를, 전 금융기관에 걸게 하였다. 이것이 케네디에게 괄 새 받은 것을 극복한 것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선언했다. 오늘날 감히 누가 그의 무덤에 침을 뱉을 자가 있는가 ? 남 전 총리의 회고록은, 자기가 국정에 참여했던 14 년 동안 역사의 증인으로, 박대통령의 곁에서 개발 시대의 핵심 참모로서,
성공과 아쉬움의 국정보고[國政報告]이다. 특히 국가최고통치자의 성패는 참모들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에 모든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한다. 특히 몇 번의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도, 잘못을 거듭 거듭한다는 경고이다. 외국의 저리[低利] 달러를 빌린다고, 불로소득에 장기투자까지 하면서, 위기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첫 번째가 300 억 달러, 두 번째가 800 억 달러 이번에는 2,000 억 달러다. 시장경제도 좋고,
외환자유화도 좋고, 외국인 투자도 좋지만 몇 번의 외환위기를 당하면서, 기업에 직접장기투자는 좋지만, 증권시장에 투기투자는 내일 도망 갈수 있는 경우, 결국은 외환위기를 초래하게 되고 특히 특정세력이 의도적으로 대한민국경제를 어렵게 하고, 그 덕을 보려면 불순세력에 얼마든지 농락당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외화수입 총량의 한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무한대로 제멋대로 언제든지 위기를
조장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중화학공업 결정은 박 정희 대통령, 김 정렴, 오 원철 등, 3 인의 미팅에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모든 정책은 그것도, 건국 최초로 누가 보아도 불가능한 정책으로 선진국 진입의 여부를 결정 짖는 대형 프로젝트를 정부주도 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시장원리에 접근하면서, 정부와 시장의 조정 역을 균형 있게 추진하고, 후발 개발도상국에서
막대한 투자 금을 내자동원과 외화도입으로 어렵게 고비를 넘기면서, 더욱이 수차례 오일쇼크를 극복하면서, 오늘에 대한민국의 기틀을 하나하나 초석을 다진, 인물이 바로 남 덕우 전 총리다. 남 덕우 총리의 일생은 박대통령의 경제개발 신화의 산증인이고, 그 핵심이다. 그는 부총리를 거쳐, 국무총리까지 역임하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대권 권유를 두 차례나 마다하고, 88 올림픽을 앞두고, 무역회관 완공을 한다.
아마도 본인의 생각으로는, 현재 박정희 신화의 주인공 중에는 분명한 한 분이다. 아마도 국가의 위기에 나설 정신적 지도자 중에 한 분이다. 박대통령 따님인, 박 근혜씨가 대통령 경선에서 힘들게 싸울 때, 박대통령 시절 그 많은 각하! 각하! 하던 추종자들 중에, 단 한분 박근혜의 후원회회장을 맡아, 노구를 이끌고 분주히 다니던 남 총리님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아 ! 그 분은 역시 한국의 선비였구나! = 다음에 계속 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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