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 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 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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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 영변 핵 시설 폭격을 막은 김 영삼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는 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 공군은 정밀공습을 통해 방사능을 누출시키지 않고, 핵시설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은 미군이 북한을 폭격하면,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전쟁이 재발할 것이 명백하므로, 북 폭[北 爆]을 절대 반대한다고 미 측에 통고했다. 한국은 미국의 보호 하에 무사하기만 바라느냐 ? 양측의 토론을 듣고만 있던,
브레진스키 박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한국의 방침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국은 북한의 핵 화[核化]를 반대하는 동시에, 북한의 핵 화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방침에도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 미국이 어떻게 하란 말이냐.” 이어 그는 “한국은 미국의 보호 하에서 무사하기만 바라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한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일침이 나를 찔렀다.
나는 그의 발언을 받아 “그런 것이 아니라, 양국의 목적은 하나이지만 목적 달성을 위한 전략을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 후 다행히 6 월 15 일,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핵동결 약속을 받아내면서 일단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브레진스키 박사가“한국은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것이냐”라고 한 말은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일반 국민은 고사하고, 군인들은 유사시에 생명을 바치고 싸워야 하는 사람들인데, 과연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는 가치가 무엇일까? 물론 그들은 가족과 나라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나라를 위해 누구와 싸우느냐가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2000 년 12 월 18 일 중앙일보에‘주적(主敵)’을 생각한다’라는 글을 썼다. 북한의 정치세력과 북한 동포를 구별하지 않고 싸잡아서 주적이라고 하면,
우리 군인들도 헷갈리고 북한 동포들도 섭섭해 할 것이니, 주적의 정의를 북한’이라고 하지 말고‘자유 민주체제와 우리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주는 세력’이라고 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내용이었다. 6·25 전쟁 당시 20 만 장병은 공산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버렸는데, 그들의 가치관은 분명했다. ‘반공통일’이 그것이다. 그러 나, 지금에 있어서는‘반공’의 명분만으로 군인들의 가치관을 통일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욱 명확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물론, 우리의 국가이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의 국가이념인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국민이나, 군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금 1994 년과 똑같은 위기상황을 놓고, 여 야[與野]와 좌 우[左右]가 서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 국민적 통합을 강조한다. 그러나 국가이념이라는
정신적 구심점 없이 과연 국민통합이 가능할까? 이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면서, 나의 이야기를 마감하기로 한다. <남 덕우 전 국무총리> 여적[餘滴] 남 덕우 전 국무총리는 자기 삶의 길을 산, 전형적인 선비의 전형이다. 피난길에 한국은행에 수석합격하고, 급수도 한 호봉을 더 받고 자금부라는 요직을 받았다. 이 경우는 장래를 보장받았다는 한국은행의 보증서다. 그가 자기가 천직으로 삼은 교수직을 택하기 위해,
한국은행을 떠나는 결단은 대단한 결단이다. 물론 우리나라 금융기관 입행 수석합격자가, 그 은행을 중도에 그것도 간부들이 만류하는데도, 박차고 나간 사람은 아마도 남총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그는 미국유학을 떠나면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귀국, 교수직을 천직[天職]으로 대학 강단에서 열심히 출강하면서, 그는 1964 년 9 월에 서강대에 정착하게 되면서, 한국경제학에 빈자리를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그 첫 저서가 가격 론[價格論]이다. 또한 경제학 대사전 편집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단군민족사 최초의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에 혁명정부의 대통령이 직접 주제 토론하는 평가교수단에 참여하여, 분기별 심사 분석 때 마다 참석 많은 비판을 하였다. 그는 1968 년에는 다시 미국 스탠포드 교환교수로 초청 받아 떠나는데, 박대통령이 이를 알고 한국에 가족 생활비를 지원 받기도 한다. 아마도 박대통령과 끈질긴 인연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남 총리는 스탠포드에서, 그와 더불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 인재들을 만난다. 김 재익 김 윤형 박사, 김 대영 통계학 박사를 만난다. 그는 미국으로 떠날 때, 박대통령이 금일봉을 하사하면서 오래 있지 말라고 하였다. 그는 귀국 후, 재무부장관 임명을 받는다. 대통령을 그동안 비판을 많이 하는데,“이제 맛 좀 봐!”하신다. 그 후, 14 년 동안 정부에서 쓴 맛 단맛을 다 보면서 정부에 몸담는다.
그는 재무장관으로 취임하여, 외유내강[外柔內剛]추호의 흔들림 없이 재무행정의 개혁을 착착 진행, 특히 정경유착인 금융 개혁 시에는 황제소리를 듣던, 은행장이 관심의 초점이다. 필자도 그 당시 은행 인으로서, 여론은 그 사람은 절대 못 건드릴 것이다. 그리고 당에서 반대하고, 당의장이 대통령에게 반대의사를 분명히 전달하였다. 박대통령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였을까? 대통령이 장관을 불러, 그 사람을 바꾸는데 반대가 극심하니
다시 생각하라고 하니, 그러나 남장관은 대통령 각하! 그러면 현제 진행시킨 모든 개혁이 수포 돌아간다고 강력히 반대한다. 아마도 전하 통촉하옵소서! 하였을 것이다. 결국 대통령께서 장관의 지시대로 해 ! 그 당시 은행원들은 정말 남 장관이 대단 하구나 ! 그는 우리 금융인의 구세주다. 하면서, 남 덕우 만세를 불렀다. 금융기관에서 행장이나 임원이 내부에서 임명되면, 그 조직은 활력이 넘치고 조직에 생기가 넘친다.
그리고 모든 직원이 승진한 기분으로 만세 삼창이 나온다. 나도 임원이 되고 행장이 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에 신명이 나는 것이다. 오늘날 자리만 비면, 인사추천회의가 열리고 청와대 오더나, 박수로 통과시키는 것은 당장 고쳐야 한다. 그 조직에 최고 전문경영인은 그 조직 안에 있는 법이다. 은행장이나 임원이 외부에서 낙하산을 타고 투하되면, 그 조직은 생기를 잃는다. 외부에서 은행장이나, 임원은, = 다음에 계속 됩니다 =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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