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 28 =
박태준과 포항 제철의 건설 신화
세계 제일 중석광의 명성에 걸맞게 웅장했다. 그러나 광원들은 활기가 없었다. 나는 막장까지 살폈다. 사원주택을 둘러보았다. 헛간이나 축사 같았다. 개울가에 빨래하는 광원들 부인들에게, 나는 새로 부임한 사장이다. 무엇이든지 건의하라고 몇 번 물으니“사택에 빈대 약 좀 쳐 주세요”“빈대 약 요? ” 허를 찔린 것이다. "빈대 약이라니’너무 보잘 것 없는 바람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원들의 주거환경에 대한 모든 불만이 담긴 말이다. 빈대가 하도 많아 식구들이 밤잠을 못 잔다는 것이다.
즉시 빈대 약을 치도록 엄명을 내리고 사원주택 건설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담당은 봉급 주기도 빠듯하다고 한다.‘회사 경영은 내가 한다. 내가 책임진다. 당장 계획을 세워라. 아니면 사표를 내라’고 호통을 쳤다. 나는 서울로 올라와 담당임원에게 상동광산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직책 맡은 지 2 년밖에 안 되고 너무 바빠서 한 번도 못 가봤다고 한다.‘일제 소림광산 때 지은 다락같은 사택들이 너무 낡고 빈대가 많아 못살 정도니 당장 다 헐어내도록 해’그리고 연차적으로 아파트를 짓도록 지시했다.
나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어느 누구의 경영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동양권투 챔피언 김 기수를 세계챔피언으로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고, 김 기수를 불러 열심히 뒷받침하여 결국 66 년 6 월 25 일 대통령까지 보는 앞에서 세계챔피언을 만들었다. 당시 대한중석 축구팀은 국가 대표[代表]급 들이다. 그러나 시합이 없을 때는 광산에서 광석을 캐고 있었다. 나는 73 년 7 월 3 일 포항제철 1 기 준공기념으로 축구단을 창단했다. 포스코는 초창기에 신일본제철의 신세를 많이 졌다.
그들에게서 쇠를 만드는 걸음마부터 배웠다. 그러나 축구만큼은 포스코가 제철의 어른인 신일본제철을 번번이 이겼다. 두 팀 간에 첫 경기를 TV 중계했는데, 이 회택의 꼴로 승리했다. 친선경기 중, 신일본제철 사장에게 우리를 이겨보라고 큰 소리쳤다. 포스코는 용광로를 구경조차 못한 39 명의 창업요원들로 창업[創業]식을 가졌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완전한 무에서 시작한 것이다. 우리에겐 오직 정신뿐이었다. 단지 대한국제 제철 차관단(KISA)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예비계약서가 1 만 쪽이 넘는 구매 리스트 검토,
영일만의 부지수용, 장비구매 검토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어 일본 철강 자문용역[諮問用役]단을 고용했고, 우리는 비관적 전망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KISA는 차관승인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계은행 한국 담당자도 한국엔 제철소는 경제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낸 것이다. 그것은 한국 제철소에 돈을 빌려주면 떼이니 금고를 열지 말라는 경고이다. 나는 어려움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69 년 1 월 하순 미국 피츠버그로 날아가 KISA 코퍼스사 포이 회장과 담판을 할 작정이었다. 최 주선과 안 병화를 합류시켜,
세계 최고의 철강 엔지니어링회사의 포이와 마주앉았다. 세계철강업계의 거물과 빈국의 철강회사 대표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결정은 NO 였다. 자사의 보고서를 무시할 수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좌절감과 배신감 서러움 이런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는 밤 11 시가 넘어서 그를 다시 만나 담판을 하기로 하고 한국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종합제철소가 절실하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포이는 미소를 지으며‘당신의 애국심[愛國心]은 이해하나, 그것은 사업과는 별개이다’하고 최후통첩을 한다.
제철소를 짓는다고 남의 집까지 다 허물어 놓은 상황에서 돈을 못주겠다니 그러면 포철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제철소에 인생을 걸었는데, 1 억 달러가 없어서! 참으로 하늘도 무심[無心]하구나! 하늘을 향해 농성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나에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온 몸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대일청구권 자금인 일제 식민지 배상금! 조상의 피맺힌 돈이 남았을 것이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런 것을 예술가들은 영감[靈感]이라고 할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영감[靈感]이었다. 1966 년부터 1975 년까지 10 년간에 걸쳐 분할 지불하기로 한 유상자금 3 억 달러 중, 1 억 달러가 남아 있을 것이다. 7 년 거치 20 년 상환 연 3.5%의 이자[利子] 대외경제협력 자금 2 억 달러 중 얼마가 있을 것이다. 나는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놈들하고는 다 틀렸습니다. 우리가 기만을 당한 겁니다”“무슨 소리야?”“워싱턴에서도 안 되게 돼 있습니다. 믿지 마십시오. 사업적으로 안 된다는 놈들을 무슨 재주로 끌고 오겠습니까?”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방도가 없겠나? 무조건 제철소는 지어야 해”“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 전화 드린 겁니다”“뭔가?”“대일청구권 자금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유상, 무상 합치면 1 억 달러는 안 되겠습니까?”“그래 좋아! 자네가 기막힌 생각을 해냈군! 그 정도는 될 거야”대통령은 즉시 수락했다. 우리는 그 돈을 영일만으로 끌어오기 위한 방법에 현실적 장벽은 높았다. 당장 넘어야 할 벽은 일본 내각과 의회, 일본 철강업계였다. 일본은 자금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비준문서에 돈의 용처까지 명시했다. 그걸 바꿀 방법이 문제이다.
농업[農業]에 지원하기로 한 자금을 제철소[製鐵所]의 건설자금으로 돌릴 경우에 일본은 반대부터 하고 나설 것이다. 나는 직접 부딪치기로 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야스오카부터 설득에 나섰다. 제철소 없이 한국은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는 마음을 활짝 열었다. 그는 나의 청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일본 최대 제철소인 야하타 제철의(후에 후지제철과 합병 신일본제철이 됨) 이니야마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내 방에 한국 포철의 박 사장이 와 있습니다. 그의 꿈이 실현되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니야마 사무실로 달려갔다. 이니야마 사장은 시종일관 온화한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일본제철 기술을 이전하는 데는 고도[高度]의 정치적 결정이 뒤따라야 하지만, 협력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후지제철의 나가노 사장도 만나게 해주었다. 나는 구원의 동아줄을 잡은 것이다. 이나야마는 포철의 제일 큰 은인[恩人]이 되었다. 1963 년 3 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학렬 경제수석이 대일청구권자금에서 8 천만 달러가 남았다고 한다. 대통령은 즉각 자금사용을 동결[凍結]시키고,
당분간 비공개[非公開]로 다룰 것을 지시했다. 7 월에 박 충훈 부총리가 종합제철 프로젝트 재검토 발언으로 신문에는 제철소를 짓지 말고, 철[鐵]을 수입하라고 사설을 쓰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진노하고 부총리를 경질했다. 후임에 김 학열 부총리가 임명되어 즉각 경제기획원에 종합제철 전담반을 구성했다. 이때부터 종합제철 추진은 속도를 내게 된다. 나는 일본으로 가서 정, 재계의 거물들을 만났다. 외무상, 대장상, 통상상[通商相] 야스오카의 치밀하고 적극적인 도움으로 나는 많은 우군을 만들 수 있었다.
끝까지 애를 먹인 사람은 오히라였다. 일본 내각은 전원 합의체라, 그가 반대하면 물거품이 된다. 오히라는 가느다란 눈을 가진 큰 바위 얼굴의 경제전문가이다.‘산업화의 첫 단계는 농업자립화입니다. 비료공장, 농기계공장을 세워 농업부터 일으켜야 합니다’ 나는 한국이 중공업부터 선택한 배경을 설명, 그는 실눈을 뜨지 않고 두 번째 면담에서도 퇴짜를 맞았다. 일본 내각은 8 월 22 일 한국의 대일청구권 자금 전용과 제철소 지원을 결정하기로 돼있었다. 오히라가 고춧가루를 뿌렸다. 아직 검토단계며, = 다음에 계속 됩니다 =
-- 안동 촌노 --
소음이 심해서 환풍기를 장식품으로 쓰시는 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소음 없이 실내를 쾌적하게 만드는 환풍기로 변신하는 마술
게시물 삭제요청방법
Copyright(c) www.nongak.net
tapng97@hanmail.net
연락처 : 010-4696-7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