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면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必讀書]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 져서, 저가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 26 회 =
박정희의 용인술[用人術]과 충신을 만드는법
그들은 단순한 참모가 아니다. 물론 단순한 충신들이 아니다. 양신[良臣]이고, 정신[貞臣]이고, 충신[忠臣]이고, 지신[智臣]이고, 성신[聖臣]의 반열에 오른 국보급 들이다. 그래서 박대통령은 오 원철 특보[特報]를 국보[國寶]다, 라고 격찬하였다. 본래 대통령은 아무리 잘한 일이라도 수고했어! 차 한잔 하지가, 최고의 찬사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오수석도 속마음으로 대통령 각하! 각하도 단군 이래 통치자 중에 최고의 국보이시면서, 그것도 국보“일호”이십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 8 장.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박태준은 혁명 직후, 국가재건 최고회의[最高會議] 박정희 의장 초대 비서실장[秘書室長]이다. 박태준은 박정희 시대의 조국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에 신화[神話]속에 혁혁한 역사적 천명[天命]에 최선을 다한 경제개발에 열전적[烈傳的] 인물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물 중에 분명 한 사람이며, 박태준 하면 그것은 포항제철[浦港製鐵]이고, 포항제철 하면 박태준이다. 언젠가 포항제철은 태준 제철이 될 것이다. 물론 포항제철 정문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나란히 동상[銅像]이 설 것이다.
이 글은 중앙일보에 박태준 씨가 연재하는 것을 매일매일 감명[感銘]깊게 읽으면서, 특히 박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으로 조국근대화의 일익을 담당한 조국근대화의 신화[神話]를 생생히 알 수 있어서, 박 대통령 실록[實錄]에는 분명한 장으로 기록 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되어, 그 중요 부분을 정리하는 것이다. 박태준 회장은 78 세의 희수[喜壽]를 맞이하여, 나름대로 행복한 황혼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국무총리까지 역임하고, 역대 대통령들과 모두 많은 관계를 맺었다. 1990 년 11 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으로부터,
레지용 도 뇌르 훈장을 받을 때,“당신은 국가가 필요로 할 때 어디서나 가장 앞에 서 있었다” 한국전쟁 때는 장교로 투신했고, 국가가 경제현대화를 요구할 때는 당신은 기업인으로 나라를 위하여 앞장에 섰다. 국가가 미래를 위한 정치인을 필요로 할 때, 당신은 정치인으로 그 부름에 응 했다, 라는 박태준은 청년 장교시절 나의 혼에 불을 붙였던 짧은 인생을 “영원히 조국에” 좌우명[座右銘]으로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여전히 늙은 “나의 혼을 자유로이 풀어주지 않는다.”내가 지난 삶을 되짚어 보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이 때문이다. 흘러간 경험이나마, 조국의 발전에 보탬이 되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이 기록이 우리 후손이 20 세기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데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의 인연[因緣]은 박태준이가 대령시절, 육본 인사 처리과장 재직 시[在職時] 박정희 대통령은 신설부대인 부산군수기지 사령관으로 가면서 같이 가게 되어 인연을 맺는다. 당시 부산에는 김 동하 장군과 김종필 중령이 드나들었다. 그러나 군 당국에서는 부산을 주시하고 있었다. 1961 년 5 월 16 일
새벽에 마침내 거사는 일어났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셋방에 있었다. 박정희 장군은“거사 명단에서 나를 뺀” 것이다. 초조한 새벽이 갔다. 총성 없는 무혈혁명[無血革命]의 아침이 왔다. 나는 혁명 본부로 달려갔다. 박 장군은‘기어이 왔 군’이라고 했고, 나는 그 곳이 근무처가 되었다. 숨 가팠던 며칠이 무사히 지나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결성되고 나는 부의장을 맡은 박 소장의 비서실장[秘書室長]으로 발탁되었다. 혁명이 성공하고, 박 장군이 나를 혁명에 직접참가를 못하게 한 이유를 알았다.
나는 혁명이 실패할 경우도 가정할 수밖에 없었어. 실패하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하잖아? 그 날이 오게 되면 자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할 작정이었어. 하나는 자네는 무사히 남아서 우리 군[軍]을 이끌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가족을 돌봐 달라는 것 이었어’! 나는 박 장군의 말을 듣고 가슴이 찡했다. 고맙기도 하고 인간적인 신뢰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경제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기회가 왔다. 상공 담당 최고위원으로 국가정책 수립에 참여하고 경제학 교수를 만나 의견을 듣고,
전문가들과 토의하고 주요현장을 답사하고 경제공부로 국민경제의 실태를 파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너무나 한심했다. 전력[電力] 공장[工場] 도로[道路] 항만[港灣] 공항[空港] 도대체가 무[無]의 상태다. 박 의장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 의장의 넋두리가 생각난다.‘革命이 별 건가? 거창하게 보이지만, 별 것 아니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거여, 이 모양으로 굶주리고 헐벗어서야 무슨 재주로 사람답게 살겠나? 우리는 목숨 걸고 경제[經濟]를 일으켜야 돼’ 1962 년
제 1 차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대만과는 반대로 중공업부터 시작했다. 정유, 비료, 제철이 급선무였다. 울산공단이 산업화공단으로 바쁘게 되었다. 제철소[製鐵所]만 빼고는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충주와 나주비료공장, 울산의 정유공장, 동해의 시멘트공장, 영월의 발전소 등은 수지타산도 맞고 해외차관도 잘 진행되었다. 1968 년 6 월 15 일 새벽 4 시 포항제철 건설요원들을 비상소집, 우리 조상들의 피의 대가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가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 때는 우리 모두 저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다. 포항 모래벌판에 종합제철소[綜合製鐵所]를 세운다는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향 우 정신”[右向右 精神] 우리는 일을 그르칠 경우에는 오른쪽에 보이는 영일만에 모두 빠져 죽겠다는 옥쇄[玉碎]각오를 右 向 右 정신이라고 하였다. 나는 포항으로 떠나는 날, 가족에게 나는 없는 사람으로 여기라고 하였다. 포항 바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눈을 비비면서, 모두가 모래막이 안경을 쓰고 일했다. 11월. 박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처음으로
포항 현장에 내려왔다. 모래바람에 눈을 비비면서, 허허벌판을 직접 본 대통령은 혀를 차면서‘여보게 박 사장, 이거 어디 되겠나? 나를 믿고 내려 보냈고, 언제나 자신에 차 있던 그의 한숨에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않았다. 나는 하면 된다는 군대식 정신으로 밀어붙였다. 24 시간 돌관공사가 시작되자, 현장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결국 비상령을 내려, 하루 3 시간씩만 자고 콘크리트 타설[打設]을 완전히 완료했다. 당시 내 부하도 아닌, 다른 회사 임원들까지 혼쭐을 낸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다.
현대건설[現代建設]임원까지 30 분간 엎드려뻗쳐를 해야 했다. 남의 회사 임원에게 참으로 미안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미치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죽어도 공장만은 지어야 한다는 절대 절명[絶大絶命]의 사명감으로 우리는 뭉쳐있었다. 사람들은 공사현장을‘신앙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나는 제철소 추진위원장으로 2 년 가까이 대한 국제제철 차관단 컨소시엄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5 개국 8 개사가 참여하는 대한제철 차관단을 1966 년 12 월
미국 피츠버그에서 결성하고, 제철소 추진위원장으로 2 년 가까이 뛰었다. 기공식 날, 장 부총리는‘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지 4 천 3 백 년 만에 종합제철공장을 건설하게 됐습니다. 하는 특유의 침착한 목소리로 그는 포철 건설의 감개와 포부를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산업화를 성공시키려면, 고속도로와 제철소는 필수[必需]야. 나는 경부고속도로[京釜高速道路]를 책임 질 태니, 자네는 제철소[製鐵所]를 맡게! 제철소[製鐵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그러나 임자는 할 수 있어’더이상 나에게는 물러 설수 없는 것이었다.
-- 안동 촌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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