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7 부 =
수출산업과 중화학 공업 진흥책을 결단 하다.
항상 심사숙고[深思熟考]한다. 민족이 불행하면 책임은 지도자에게 있으나, 국민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초에 책임질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의 존재가 중요하다. 민주국가에서는 그런 지도자를 국민이 직접 뽑는다. 문제는 국민이 어떤 대통령을 뽑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하기가 매우 어렵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뽑고는 반드시 박대통령하고 비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실망한다. 손가락을 원망하고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고 한탄한다. 후임 대통령들은 박대통령을 독재자로 몰아붙인다. 오 원철 불굴[不屈]의 도전[挑戰] 한강[漢江]의 기적[奇蹟] 박정희 어떻게 경제 강국[經濟 强國]을 만들었나. 오 원철이 제갈공명[諸葛孔明]이구만! 박 정희 대통령은“도둑이 무서워”소 키우는 것을 포기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임자! 100 억 달러 수출하려면, 무슨 공업을 육성해야 하지? 한 세대의 생존은 유한하나, 조국과 민족의 생명은 영원한 것. 우리 세대가 땀 흘려 이룩하는 것은 결코 오늘을 잘살고자 함이 아니요,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 길이 생명을 생동케 하고자 함이다. 이상은 박대통령이 서울 大 졸업식에서 축사한 대통령의 국가관[國家觀]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노심초사[勞心焦思] 온 힘을 쏟아 붓는 18 년 동안 열과 성을 다하여 뛰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는 18 년 동안 박 대통령 측근에서 나라 경제를 일으키기 위하여 어떻게 고심하고, 어떻게 일했는가를 사실대로 역사적 증언을 26 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신분으로 이야기 하겠다. 국가적으로는 조국근대화를 이룩한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제혁명 지도력[指導力]이고, 국제적 관점에서 박정희라는 후진국[後進國]의 산업 개발 형[産業開發形] 국가원수[國家元首]의 기록[記錄]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방식과 한국의 산업혁명[産業革命] 현명한 국민은 전진하고, 성의 있게 문제해결에 나서는 자의 편에 설 것이며, 막연한 위기 위기의식 조장을 증오할 것이다. 위기 타개를 위한 노력 앞에선 위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나 스스로 삽과 괭이를 들것이며, 증산과 검약에 앞장 설 것이다. 박대통령 사업추진 단계 1. 원리의 도출 2. 원칙의 수립 3. 시행계획 작성
4. 집행단계 브리핑 시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일종의 시나리오로 브리핑의 성패가 좌우된다. 결론은 명확하고 공감하고 동감해야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다. 원리의 도출은 발견되는 것이지, 생각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시[國是]는 나라의 기본이 되는 방침이고, 정해지면 모든 행정의 판단 기준이 된다. 경제 원리라는 것은 국가 경제발전의 목적이다. 부득이 원리를 변경하면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60 년대 경제 원리는 민생고를 해결하고, 경제자립은 60 년대 경제개발 원리였다.
박대통령은 이 원리를 달성하고자,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수출 제일주의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수출이야 말로 국가 기본 전략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박 대통령은 수출 제일주의를 우리나라의 국시[國是] 즉 경제발전의 원리로 승격시켰다. 박대통령은 집권 18 년 동안 수출제일주의 원리는 한 번도 변경한 적이 없다. 그래서 국민이 믿고 따른 것이다. 원리가 통하는 시대였다. 박대통령은 원리나 국시를 구호로 하는 것을 거부하고, 구상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모든 정책을 수치화[數値化]하는 방식을 절대화 한다. 박대통령은 수출 제일주의 1964 년 - 1970 년에는 10 억 달러 목표다. 년 간 40% 의 증가율이다. 비록 보리밥을 먹을망정, 국민 민생고는 해결되고 있었다. 전 산업의 수출시대를 경제자립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GNP 1,000 달러로 국민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나라는 중화학공업 국가가 된다고 했다. 북한과의 경제전쟁에서 완승한 것이다. 즉 시장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선의[善意] 대결에서 승리한 것이다. “하면 된 다” 는
우리도 할 수 있다.”정부와 국민을 설득하고 격려한 것이 대한민국 경제건설의 구가전략[國家戰略]인 것이다. 그 결과 년 간 수출 1964 년 - 1970 년 41 . 9% 1971 년 - 1979 년 39.8% 달성. 16 년간 평균 40% 의 고도성장이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박대통령의 성품과 신념으로 하면 된 다”는 정신은 오늘까지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국민들도 살기가 어려울수록 박정희 대통령의 환생을 간절히 빌고 있는 것이다. 박대통령의 리더십은 하면 된다는 국가전략의 초지일관, 도전과 응전의
정신력으로 일관한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국가전략 정책 토론장에서는 관료들의 상하를 가리지 않고, 과장급라고도 토의하고 격론을 벌이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개발을 뒷받침한 테크노크라트가 우대되는 시대의 도래[到來]이다. 박대통령은 혁명가답게 신상필벌이 확실하고, 잘못에는 천동소리를 낸다. 30 개의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는 풍조가 사라졌다. 박 대통령에 기적의 경제개발시대를 산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매일 산업현장[産業現場]을 방문 경영자와 근로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업하고 있다. 박 대통령에 산업의 집념은 확인[確認] 또 확인[確認] 실시구시[實事求是]의 정신[精神]이다. 박대통령은 매달 개최되는“수출확대회의”경제기획원에서 개최되는 월간경제동향 보고회의에 반드시 참석 하면서, 산업계 의견 청취, 최근 정보 분석을 하면서 문제점을 현장에서 해결한다. 회의시간은 2 시간 매월 4 시간을 국시로 정한, 국가전략을 공개적으로 토의 결론을 내린다. 박대통령은 15 년간 (1963 - 1979) 회의 소요시간은 총 700 시간이다. 토의 내용은 수출 목표, 수출액, 경제성장률,
국민 1 인당 GNP, 물가지수, 미곡생산량, 등 토의 내용이 언론에 공개, 전 국민[全國民]이 전문 경제지식을 갖게 되고, 장래에 희망을 갖고 경제개발에 동참하게 된다. 중소기업 신제품을 소개하고 격려하면서 산업생산에 역동성을 불어 넣는다. 경제동향 보고 때는 새마을 운동 지도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자조, 자립, 협동 3 대 새마을정신을 강조했다. 새마을 운동은 40 년이 지난, 오늘날 많은 나라들이 본받기를 원하고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박 대통령 통치 이념은 공개와 현장주의로 권위주의로 몰아붙이는 비판은 몰상식이다.
중국의 경제개발도 기적적이다. 그러나 불균형, 빈부격차, 부정부패, 윤리적 타락 등 해결 방법을 새마을 운동 정신에서 찾고자 한다. “가난한 농촌을 얼마나 끔직 하게 사랑했기에 세계에서 박 정희 만큼 농촌을 사랑했던 대통령이 있었던가? 926 억 원을 투자하여 농촌에 전기[電氣] 불을 켜주었다. 농어촌 전화사업[電化事業] 농촌 현대화는 농촌 해방[解放]이다. 농촌 근대화다. 박대통령은 15 년간 926억 원(경부고속도로 건설비 430 억의 2 배)를 투입 혁명전에 농촌 전기 가설 율은 12% 이다. 10 년 거치 30 년 분할 상환[分割償還] 조건으로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보조[補助]하는 것과 같다. 당초 목표는 1979 년까지 253 만호. 1976 년 3 년 앞당겼다. 농촌 전화 사업은 우리 농촌을 문명사회로 혁신하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을 같이 하면서, 교육, 사회적인 혁명적 변화를 가져와 TV, 라디오, 세탁기, 전기밥솥, 모든 가전제품이 이용되고, 가정용 전압을 110 에서 220 으로 승압시켰다. 이러한 개혁이 테크노크라트 형 개혁이다. 박 대통령은 한국경제개발 총사령관[總司令官]이다. 경제 총수는 장기영, 박 충훈, 김 학렬, 태 완선, 남 덕우, 신 현학 1969 년 10 월에 부임, = 내일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