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이나, 박정희 시대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현장에서 다 같이 힘들게 조국근대화를 이루신, 육 십 대 이상의 조국근대화 세대들은 반드시 박정희 대통령 통치 철학 연구소 소장이신, 김세영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가감[加減]없이 진실 되게 기록하신 현대사인,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신 정치철학과 5,16 혁명으로 민족중흥을 성취[成就]하신,
박정희 대통령님의 업적에 대한 평가의 글을 봐 주시길 부탁 올립니다. 이글은 앞으로 저가 수십 회에 걸쳐서, 여기 논장에 올릴 것입니다. 여기 기록되는 글은, 김세영 선생님께서 직접 장기영 총리의 재경부에서 근무하시면서 쓰신 글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도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단 한자도 빼지 않고 그대로 기술[記述]합니다. 다만 한자어가 많이 쓰여져서, 저가 알기쉽도록 한글로 번역을 하면서, 오타가 있는 글은 저가 수정과 교정을 했음을 말씀드립니다.
= 제 14 부 =
포항 제철과 고속도로 건설의 우렁찬 진군소리
자기에게 완전한 자유재량권[自由裁量權]을 준다면, 시장자유화 정책을 성공적으로 해낼 자신이 있다고 하였다. 대통령은 장기영을 경제부총리로 임명하고, 반드시 성공하라고 당부한다. 한 달 후에 1964 년 6 월 상공부 차관을 거처, 1966 년에 재무장관으로 1 년 8 개월동안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11 월 30 일 수출 1 억 달러 돌파하고, 1964 년 12 월 31 일 1 억 2 천만 달러 달성을 대통령에게 보고, 대통령의 격려와 위로의 말씀이 있었다. 재무장관 임명 국세청 초대 청장, 이 락선은 2 년 만에 세수 466 억을 66 년에 1,004 억원을
달성. 국세청을 신설하고, 초대 청장에 이락선이 임명되었다. 인사권을 청장에게 위임했다. 이락선 청장은 세입예산 보다 50 % 더 많이 세수를 올리겠다고 선언하고, 목표를 700 억으로 잡고 자동차 번호도 700 번으로 달고 다녔다. 당시 세수는 466 억으로 보고, 50% 증세액은 233 억 원으로 700 억 원이 된다. 청장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으로 일하면서 탈세를 철저히 파 해쳤다. 세무사찰을 하지 않고도 66 년에 전년대비 68.7% 증가한 704 억 달성 67 년에 47.6% 증가한 1,040 억 원을 달성하여, 2 년 만에
538 억 원 달성하였다. 새로운 세[稅]를 신설하지 않았으며, 세율(稅率)을 인상하지도 않고, 단순히 세무행정의 향상과 강화만으로 달성했다. 법대로 원칙대로 한 결과이다. 이것은 국민경제 성장에 따른 탈세나 누세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결국 국세청 발족이 정당성을 입증한 것이다. 재무부장관은 삼성 밀수사건으로 물러났다. 나는 대통령으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얼마 후에 장기영 부총리가 퇴임하고, 박 충훈 상공이 부총리로 그 후임에 김 정렴이 상공장관[商工長官]에 임명되었다.
상공부에 절박한 문제는 전력문제이다. 1964 년 미 전력조사단[美電力調査團]이 당초 전원개발 계획이 과대 책정되었다고, 축소를 제 협상하여, 전력수요 성장률 평균 11.9% 책정하였다. 정부는 년 평균성장률을 15.4% 66 년 전기수요성장률 20.5%, 67 년 33.5% 년 평균 29.6% 전기는 수입도 저장도 불가능하다. 한집 한등 끄기 범국민운동, 시간별 제한 송전, 밤거리 암혹으로, 군산 화력, 화천수력발전소, 부산 화력, 울산발전소, 왕십리, 부평 1968 년 8 월에 전국 제한 송전 철폐하다. 1965 년부터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수출 진흥과 중화학공업의 시동. 67 년 3 억 6 천만 달라 수출 68 년 5 억 달러 69 년 7 억 달러 달성 포항종합제철 건설 포항제철과 울산석유화학단지 건설 제 2차 경제개발 5 개년 계획(67-71)중, 중화학공업의 2 대 핵심 사업으로, 종합제철은 경제기획원이 주관하고, 상공부 협조 석유화학공업단지는 상공부가 주관하고, 경제기획원 협조 강력한 정부 주도. 포항제철은 세계가 반대하는 가운데, 결국 박대통령의 집념으로 성공, 부총리 김 학렬과 박태준 사장의 합작품이다. 특히 일본 몇몇 장관들의 협조가 힘이 되었다.
65 년 경제성 부적당으로 부결. 박대통령의 일본과의 경제협력으로 종합제철을 건설하게 되었다. 문제는 생산규모다. 1백 만 톤으로 결정하고, 항만. 부두. 토목. 도로. 철도는 국가가 부담한다. 철강공업육성법을 재정 관세 감면, 특별 상각. 공공요금 활인 제정자금 지원 등 국가적 특별지원체제이다. 투자 총액수는 1 억 6 천만 8 백 5 만 8 천 달러로 무이자 무상자금 3,080 만 달러. 이자 3.5% 유상자금 4.642 만 9 천 달러. 이자 5.875 수출입은행 5.249 만 8 천 달러. 이자 6.6% 민간상업차관 3.833 만 2 천 달러
합계 1 억 6 천 8 백 5 만 8 천 달러, 박대통령의 대 영단[大 英斷]이다. 1968 년 착공하여, 1973 년 7 월 완공 박대통령의 비상한 관심과 박태준회장의 임직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준공, 1983 년까지 무배당 제 1 차 260 만 톤. 제 2 차 550 만 톤. 1981 년 850 만 톤 생산력 확보를 했고, 울산석유화학단지[蔚山石油化學團地]건설. 석유화학공업은 관 주도로 건설 후에, 각 공장을 실수요자[實需要者]에게 불하하는 방식으로 당시 공업행정가인 오 원철 씨가 주도하였고, 박 정희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정치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경제 밖에 모르는, 김 정렴을 9 년 하고도 3 개월 재임하게 한 것은 모든 후임들이 성찰할 문제이다. 김영삼은 임기 중에 기획원 장관을 5 명이나 바꾸었다. 그래서 국가는 부도를 내고 만 것이다. 국정의 일관성[一貫性]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증명한 것이다. 우리민족의 가난은 숙명적이고 운명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가난을 당연시 한 예로,“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규정은 5000 년 동안, 단군 이래 5.16 혁명까지 우리 역사를 지배했다. 가난의 대명사인 보리 고개,
춘궁기, 절량농가, 초근목피, 고리채, 잉여농산물, 빈곤의 악순환의 민족을 굶주림과 가난과 억눌림에서, 꿀과 젓이 넘치는 가난으로 인도한 한국의 모세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혼[民族魂]을 부활시키고자, 새벽종을 힘차게 친 것이다. 이것이 세종 이후에 동방에 요순의 위덕인 것이다. 독일의 히틀러가 실업자 구제를 위해, 만든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독일 국민은 경의를 표한다고 독일 수상의 증언이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다. 고속도로를 시작할 때, 두 김 씨는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건설하고 망하듯이
박대통령도 경부고소도로 건설하고 말할 것이라고 악담을 하고, 꼬붕들을 몰고 가서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중장비 앞에 들어 눕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들은 소위 민주화 세력들은 박대통령이 하는 민족중흥의 거대한 고속도로 건설도 반대하는 것이 민주화이고, 공업단지 반대하는 것이 민주화이고, 종합제철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 민주화로 착각한 것이 민주화였다. 더욱이 선진국들이 한국이 무슨 고속도로[高速道路]냐 ? 하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독일에 에르하르트 수상은 고속도로 건설이 경제개발에 첫 사업이 된다고 주장하고,
박대통령에게 고속도로 건설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물론 독일 수상의 권유를 만난을 극복하고, 실천한 박정희 대통령의 집념도 대단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국토에 생명력을 관통시킨 대동맥으로, 역사 창조의 생명력을 불어 넣은 것이다. 1968 년 12 월 21 일 서울과 인천, 서울 수원 개통 (1910년 쾰 론-본 20KM 착공 1932 년 완공 22 년간, 미국 1965 년 6 만 4 천 KM 독일에 10 배. 1967 년 서울과 인천 고속도로 건설, 세계적인 선구적 평가. 박대통령은 6.25 전쟁 중
미국군사교육 방미[訪美]중에 미국고속도로에서, 고속버스를 타 보았던 것이다. 박대통령이 방독[訪獨]시 통역을 한, 백영훈 박사는 뤼프케 대통령은 박대통령에게 고속도로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로는 독일에 자랑이요. 독일 부흥의 상징이라고 자랑하면서, 고속도로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독일정부는 박대통령을 수행한 의전실장[儀典室長]을 고속도로에 대하여, 전문가적 설명을 하는 사람을 수행하여 고속도로에 대한 건설방법, 관리방법, 소요건설비, 자금조달, 건설장비, 등등 설명하고 박대통령의 질문에 설명하고
독일은 30 분이면 어디든지 간다고 설명하고, 고속도로는 독일에 꿈이요. 상징이라고 설명을 하고, 당시 독일 수상은 라인 강의 기적을 성취한 에르하르트다. 수상[首相]은 분단국[分斷國]은 경제번영(經濟繁榮)만이 공산주의[共産主義]를 이기는 길입니다. 나는 아우토반을 진입할 때, 마음속으로 아유토번에 경의[敬意]을 표합니다. 박 대통령은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에 수송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되어, 1967 년 고속도로 건설을 결심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건설경비를 건설부 650 억 재무부 320 억 경제기획원은 포기하고, = 내일 계속됩니다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