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6 ․ 25 남침 직전에 남한에 대한 전기 공급을 무조건 중지하였다. 그리고 전쟁으로 남한의 전력사정은 그야말로 전무한 상태 그 자체였다. 수송상의 애로는 고속도로 건설로 타개했다. 한국[韓國]의 경제기적[經濟奇蹟] 근본요인은 박 대통령의 탁월[卓越]한 영도력[領導力]에 힘입어, 고도성장[高度成長]에는 인플레 압력이 압력을 가하고 제 1, 2차 오일쇼크 중동건설 달러 증가로 화폐팽창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조기 완성을 위한 집중 지원으로 인플레 압력이 가중되었다. 중화학 공업[重化學工業] 방위산업[ 防衛産業]은
국가의 절대조건이고, 인플레는 나중에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경제개발원이 참고교재로 나의 회고록[回顧錄]을 영문판[英文版]으로 출판하겠다는 요청을 문서로 보내왔기에 나는 이를 찬동했다. 그들은 사전심사평에서 한국의 경제기적을 이룬 흥미진진한 적절한 설명이며, 개발도상국과 자유경제로 전환하는 구 공산국가들에 크게 참고가 되겠다고 총평을 하였다. 그 동안 한국의 중화학공업을 비판한 것은 주의 깊게 분석하지 않은 경우라고 결론지었다. 나의 회고록은 흥망선상의 정책수립 어느 행정실무자의
회고록이 1994 년 10월 세계은행 경제개발원의 정책수립 회고 총서의 창간호로 출판되었다. 나의 회고록은 개발도상국과 자유경제로 전환하는 공산권의 공무원과 중앙은행 및 개발은행의 임직원을 위하여 출판되는 것이지만 경제개발론 정치학, 국제관계론 및 지역연구를 하는 학도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이룩한 업적은 세계은행이 존속하는 한 180 여 가맹국은 물론, 경제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학도들에게 계속해서 널리 알려질 것이다. 작은 거인[巨人] 박정희. 자나 깨나
자립경제[自立經濟] 와 자주국방[自主國防] 박 대통령은 우리 국사[國史]에 대한 책을 애독[愛讀]했고, 그 방면에서 조예가 깊었으며 뚜렷한 역사관[歷史觀]을 가지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역사관[歷史觀]을 요약하면, 우리 민족[民族]이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는 역사[歷史]와 정통 제도[傳統 制度]와 문화[文化]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民族]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역사관[歷史觀]에 입각하여, 조국의 재통일이 우리시대 우리 세대에 성취하여야 할, 민족의 지상명제[ 地上命題]임을 인식[認識]하고
실현 가능한 통일방법론을 정립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통일의 길은 조국 근대화에 있고, 근대화의 길이 경제자립에 있는 것이라면 자립은 통일의 첫 단계가 되는 것이다. 라는 3 단계 목표를 설정하고 우선 자립경제 건설을 주도하였고 간단없는 북한의 무력침투에 대비하기 위하여 국방역량을 꾸준히 배양해 왔으며 평화통일의 여건성숙을 위해 항상 노력해 왔다. 국방[國防]을 통[通]해 지키려한 목적[目的] 그리고 국방을 위해 갖춰야 할 목적은 가난이 없는 조국祖國] 잘사는 조국[祖國]이었다. 증산, 수출, 건설, 절약,
저축, 근면, 자조, 협동 한 손으로 일하고 한 손으로 건설하자, 수출입국 조국근대화, 유비무한, 자주국방,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강조하였다. 인간[人間]박정희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20 리 길을 걸어 보통학교를 다니고 먹을 것이 없어 간장을 손으로 찍어 먹기가 일쑤였다. 그는 산에 밤나무를 많이 심어 밤알을 농촌 아이들이 마음껏 따 먹을 수 있기를 소원했다. 보릿고개, 춘궁기, 절량농가, 초근목피 등의 굶주림을 수출입국으로 중화학공업 성공으로 자기 조국인 한국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북의 위협에 250 만
방위군[예비군] 창설과 유비무한의 국가방위의 철저를 기했으며, 국난극복정신의 애국심 함양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단을 내리면, 초지일관 꾸준히 추진한 대통령은 남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난상토론을 거친 후 결단을 내렸다. 지하수개발, 양수기, 고속도로 주변 환경조성 문제 등, 사소하면서도 대통령이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의 관심사항은 거듭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다. 박 대통령은 항상 사색하고 창안하는 분이다. 박 대통령의 성공은 본인의 심사숙고, 실무자 의견을 존중, 토의함에 전문가를 찾아 나서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조경 환경 문제의 경우, 환경전문가를 찾아 한양대 오 희영 교수를 비서관으로 채용하였다. 국가적 현안에 대하여 강경론이 결정되어도 밤새 심사숙고하여 온건론으로 재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상[非常]한 기억력[記憶力]에 계수[計數]에도 강해, 주무장관이나 실무자들이 혼이 나기도 하였다. 박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항상 단정했을 뿐 아니라, 몸소 중요한 자료를 정리 보관하였다. 대통령은 하루도 빠짐없이 보리잡곡밥을 먹는다.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아름다운 농촌,
크고 작은 공장들, 아파트 단지 등을 내려다보면서 흐뭇해하였다. 대통령은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파리채로 파리를 잡기도 하였다. 대통령이 사용한 외제 3 가지는 넥타이, 만년필, 전기면도기이다. 그는 두산 백마주앙과 원당 막걸리를 애용했다. 이 경우는 대통령의 인간다운 여유자작이다. 전속이발사는 대통령의 러닝셔츠에 구멍이 숭숭 뚫어진 것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고 추억담을 하기도 한다. 대통령 서거 후 조사에서 양변기 물통 속에서 물 절약용 벽돌이 나온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혹자는 서거[逝去]후,
스위스 은행에 비자금이 있다고 말이 많았으나, 그러나 사후 25 년이 지난 후에도 음해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 증명되었다. 그는 국민정신 계몽에 정신문화원을 설립하고 국민들에게 ‘하면 된 다’ 우리도 ‘잘 살아 보세’ 하는 국민을 분발시킨 영도력은 세계 각국이 예찬하는 경제발전 이상의 위대[偉大]한 업적[業績]이다. 우리는 이제 박 대통령의 위대한 위업을 계승 발전시킬 역사적 책무를 깨달아야 한다. 잘살아 보자의 정신을 계승하여, 이제는 ‘새 마음으로 정직[正直]하게 살기’ 국민운동을 힘차게 펼쳐야 한다. 이 운동은
이 시대의 국민적 역사적 의무[義務]이다. 그리고 정지[停止]된 역사[歷史]를 전진시키자. 중요 사안에 골몰할 때 십이지장궤양을 일으킬 정도로, 박 대통령은 정신력[精神力]이 비상[非常]한 분이다.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의 운명[運命]을 좌우[左右]하는 중대사[ 重大事]를 비롯하여, 각종 사안의 최종결정자[最終決定者]로서 받는 정신적 중압[精神的 重壓]은 일반인은 상상[想像]조차 못할 정도이다. 중요 사안에 10 일 20 일간 회의하고 사색[思索]하고 주야를 불문하고 골몰할 때, 대통령은 지나친 노심초사로
십이지장궤양을 일으켰다. 비서실장의 직책이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365 일 24 시간 긴장과 고심의 연속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대통령이 중요 사안에 대하여 골몰할 때에는 나는 나대로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고심하곤 했다. 나는 아침 샤워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좌골신경통으로 많은 고통을 받아, 서서 결재를 하기도 하였는데 치료를 꾸준히 하여도 완치가 안 되었는데,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나니 모든 증상이 없어졌다. 의사 말로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어져서라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나의 몇 배의
정신적 중압을 받았을 터인데, 중대한 결정일수록 신중을 기하였고 여하한 경우에도 감정에 치우침이 없이 냉철[冷徹]한 이성적[理性的]인 결단[決斷]을 내렸다. 실로 대통령은 인내심[忍耐心]과 정신력[精神力]은 비범[非凡]하였다. 서민 대통령[庶民 大統領] 자부[自負]해 대통령은 농민이 잘 살고, 농촌이 풍요하면 특히 자작농이 늘어나면 공산주의와 싸움에서 이긴다는 신념을 가지고 공장근로자가 중산층[中産層]이 되어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4 대강 유역 개발은 참으로 훌륭한 업적이다. = 다음에 계속합니다 =
-- 안동 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