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저술한 조선의 성리학자. 생물학자이다.
약전의 형제는 4형제이다. 이복인 약현과 약전, 약종, 약용이다.
약전은 흑산도로, 목민심서를 쓴 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는데 그 이유가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였다.
김훈의 흑산은 조선의 천주교회 지도자인 조카사위 황사영과 약현을 제외한 세 형제와
조선 말기 사회의 야만성에 대한 것이다. 망해가는 조선을 붙들고 애를 쓴 마지막
왕은 정조라 생각한다.
1800년 정조가 죽은 뒤 조선은 서서히 무너져갔다. 부패한 관료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을 자각한 백성들 사이에 정감록 사상이 유포됐다.
천주교는 이런 조선 후기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대안이었다.
'흑산'은 1800년 전후를 배경으로 조선의 낡은 사회와 제도를 개혁하려고 했던
진보적 인물들의 꿈과 좌절을 그렸다. 정조 다음으로는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순인데 정조가 죽고 11세의 순조가 즉위 하자 영조의 계비인 정순황후가
수렴청정을 한다. 이때 안동 김씨인 김조순의 딸을 왕비로 책봉했고 순조가 죽고
8세인 헌종이 즉위하자 안동 김씨를 왕비로 책봉하고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강화도에서 농사나 짓고 있든 왕족을 찾아오는데 철종이다. 이때도 안동 김씨를
왕비로 책봉한다.
이때부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중앙 요직을 다 차지하고 매관매직으로
전 조선을 쑥대밭을 만든다. 그 첫 시작인 순조때 외척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 세력을 없애는데 바로 천주교 신자의 처단이었다. 당시 조선의 최고 지식인들은
천주교에 매혹되었다.
마포 한강변에 가면 절두산 천주교 성지가 있다. 바로 여기서 천주교 신자 1만 명의
목을 잘랐다. 이것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신유박해이다.
원래 지명은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잠두봉(蠶頭峰)이었는데 이 일이 있고 난후
머리를 자른 산이라는 뜻으로 절두산(切頭山)이 되었다. 그 뒤 대원군은 8,000명의
목을 또 자른다(병인양요).
당시 천주교인에게는 순교냐, 배교냐의 두 가지 선택뿐이었다. 약현은 천주교를 믿지
않았고 나머지 세 형제가 천주교를 믿었는데 약종은 배교 하지 않고 순교 했고 약전과
약용은 배교하여 목숨은 부지 했으나 그것은 더 큰 불행인 지옥을 선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가 김훈은 이 책을 쓰면서 “지옥에도 희망을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다윈은 “지구상에 살아남은 종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지적인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한 종이다”라고 했는데 작가는 “다윈의 이론은 자연계에서 벌어진
생명현상을 다룬 무 목적적. 기계론적 진화론이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그 진화의 끝에
자유나 사랑 같은 이상적 가치와 만나는 지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했다.
오늘날의 세계는 갈수록 인간성이 피폐해져 가고 야만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는 출판사의 주문에 응해 직접 펜으로 표지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스스로
‘가고가리’라고 명명한 생명체가 하나의 이상향인 ‘흑산’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다.
“소설을 다 쓰고서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미지를 그렸지요. 배교자와 순교자들이
하나의 몸체를 이뤄 수억 년 시공을 날아가는 한 마리 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흑(黑)산의 흑은 캄캄한 것이고 자산의 자(玆)는 캄캄하지만 ‘흐리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캄캄한 것은 지옥이고 흐린 것은 바로 희망이다. 그래서 약전은 책 이름을
흑산어보가 아닌 자산어보로 짓는다. 진화의 끝에는 자유와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고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