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구형 ‘징역 3년’은 그 ‘지식인’들이 만든 것이었다”―『제국의 위안부』 비판/비난에 대한 반론,그리고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
들어가면서제1부 반발에서 피소까지1. 서경식의 공격2. 발간 직후의 서평3. 가부장적 오만의 비판문법-이재승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1) 감정적 ‘혼란’의 연원-가부장적 사고와 법지상주의2) 논지 비판에 대해3) 책임과 포지션4) 책임이란 무엇인가4. 박노자의 공격1) 페이스북에서의 논쟁2) 박노자에 대한 추가답변3) 정영환의 『무엇을 위한 ‘화해’인가』 「해제」에 대해-짜깁기와 정치성제2부 피소 이후1. ‘세계’의 인식과의 싸움-『제국의 위안부』를 말한다2. 인식은 어떻게 폭력을 만드는가-서경식의 비판에 대해3.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서-『제국의 위안부』 피소 1년1.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인식의 변화2. ‘세계의 생각’의 편향된 이해3. 역사와 마주하는 방식제3부 비전문가들의 헤이트스피치1.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1965년체제-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 11. 오독과 곡해-정영환의 “방법”2. “방법” 비판에 대해서3. 『화해를 위해서』 비판에 대해서4. 정영환의 잘못된 이해2. 비판이 지향하는 곳은 어디인가?-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 21) 민족과 젠더2) 전후/현대 일본과 재일교포 지식인3) 지식인의 사고와 폭력4) 비판과 포지션3. ‘젊은 역사학자’들의 비판에 대한 반론1. 비판 방식에 대해2. 비판 내용에 대해3. 비판 태도에 대해4. 누구를 위한 거짓말인가-정영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에 대해1. 정영환의 비판과 한국의 언론보도2. 정영환의 비판의 근본적 문제3. 오류와 거짓말5. 헤이트스피치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1. 의구심2. 비판의 양상3. 식민지 트라우마제4부 위안부 문제 연구자/운동가/페미니스트의 개입1. ...(하략)
왜, 학술공간과 광장이 아니라 법정인가?“『제국의 위안부』 고소고발 사태란, 정말은 학술공간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논의를 그렇게 법정에서 이루어지도록 만든 사태이기도 하다. 나에게 비판적이었던 한일 ‘지식인’들은 이 기간 동안 나를 공론의 장에 부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판도 대중의 마녀사냥적 비난도 방관했다. (…) 이 책은 학계가 만들어주지 않았기에 내가 직접 만든, ‘공론의 장’의 첫 시도다.”(6쪽)2014년 6월 16일, 위안부 할머니 아홉 분의 이름으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민형사 고소와 함께 ‘출판금지… 등 가처분신청’을 당했던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가, 피소 4년을 맞아 그동안 진행되어온 소송의 배경과 과정을 정리한 책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1460일』과 피소 전후로 한국과 일본, 법정과 학계 안팎에서 나왔던 학자들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담은 책 『[제국의 위안부], 지식인을 말한다』를 동시에 내놓았다.2018년 6월 기준으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형사소송은 ‘1심 무죄, 2심 유죄―벌금 1,000만원’을 거쳐 대법원에 상고 중, 가처분신청은 2015년 2월에 ‘일부 인용’ 결정이 나와 박유하 교수와 출판사가 ‘이의신청’과 함께 ‘제2판 34곳 삭제판’을 발행,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은 1심에서 ‘원고 1인당 1,000만원의 손해배상’ 선고를 받고 항소 중이다.그 지식인들은 그저 기존의 운동과 연구를 지키려 했다그런데 이 소송에 관해 생각하기 위해 반드시 확인해두어야 할 사항이 세 가지가 있다.첫째, 소송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둘째, 『제국의 위안부』는 정말로, 원고 측과 검찰이 주장하는, “강제연행을 부정하고, 위안부를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고 한 책”인가? 셋째, 형사 1심 무죄 판결이 말해 준 것처럼 그게 아니라면, 원고 측과 검찰은 도대체 왜 박 교수를 고소고발하고 기소했는가?고소고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초적인 사항에 대한 확인 없이 원고와 검찰의 주장만을 믿고, 책을 읽지 않은 채로, 혹은 확증편향적인 읽기를 통해 박유하 교수를 비난해왔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 소송에 대해 말하려면 이 세 가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먼저 필요하다.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관심도에 비해 너무나도 척박한 한국의 위안부 문제 연구 정황(우리의 ‘위안부 문제’ 이해는 사실 일본인들의 연구에 90퍼센트 이상을 의존해왔다)에 안타까움을 느...(하략)
그런 목소리들이 그동안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들으려 하는 이들이 없었고, 한발 더 나아가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억압을 발화자 자신들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영환이 주장하는 “증언의 찬탈”은 오히려, 정영환 같은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에게서 곧잘 일어나곤 한다. 나는 이 책에서 그 점을 지적했고, ‘위안부’를 억압했던 이들이 나를 억압하기 시작한 것이 고소고발 사태였다. 따라서 나의 “방법”이 “윤리와 대상과의 긴장관계를 놓친 방법”이며 “역사를 쓰는 방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은 정영환이 연구 대상에 대한 나의 접근 “방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p.122이재승은 2015년 여름에 발표한 글에서도 내가 “국가의 규범 침해도 부정하고 국가의 직접적 책임도 부정한다”면서 나를 비판했다. 그러나 나는 ‘직접 책임’을 부정한 적이 없다. (…) 이재승은 그런 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법’에 기대어 모든 문제를 판단하는 방식의 한계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안부’들은 징병 등의 대상이 된 남성은 물론, 간호부 등 다른 여성들에게는 적용된 국가의 시혜적인 ‘법’의 외부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만든 일이고 결국 계급의 문제라는 점을 이재승의 ‘법지상주의’는 깨닫지 못한다.--- p.33박노자는 앞서 우크라이나와 일본을 아무런 근거 없이 결부시켰던 것처럼, 한국와 일본을 아무런 맥락 없이 갑자기 동일시하는 것이다. (...) 박노자는 기금이나 총리의 편지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 『제국의 위안부』에 쓴 내용은 완벽하게 간과하거나 무시한다. 그가 무시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의 머릿속의 “대한민국=깡패=일본”이라는 근거 없는 억측뿐이다. 그런 거친 규정이 그로 하여금 『제국의 위안부』를 “깡패국가 일본국을 용서하라”는 책이자 “결국 깡패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 수용을 의미”하는 책으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듯하다.--- p.66물론 그것을 보는 이유는 일본의 책임을 희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다. 정영환의 비판이 순수한 의문을 벗어난 곡해 수준의 것이라는 사실은, 수요를 만든 행위 자체, 즉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를 비판하는 나의 글을 인용하면서 “위의 인용은 어떻게 보면 공급이 따라갈 정도였다면 군 위안소 제도엔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481)다는 지적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업자의 일탈만 문제삼는다면 군 위안소라는 제도 자체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것”(481)이라고 쓰는 정영환의 악의적인 독해는 그의 사고회로와 논증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p.129나는 위안부를 만든 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주의, 제국주의의 여성/민족/계급/매춘차별의식이므로 일본은 그런 근대국가의 시스템 문제였음을 인식하고 위안부에 대해 사죄/보상을 하는 것이 옳다고 썼다. 그런데도 정영환은 ‘박유하는 한일합방을 긍정하고 1965년체제를 수호하고 있으며 위안부 할머니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거짓주장을 편다. (…) 나는 정영환의 왜곡을 범죄 수준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영환의 비판 “방법”은 서경식이나 김부자 등 다른 재일교포들의 나에 대한 비판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p.116~117실제로, 군인이 끌고 갔다는 식의 강제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면서 논의가 ‘인신매매’로 옮겨갔고, 요시미 선생조차 ‘구조적 강제성’을 말한다. 그런데 ‘구조적 강제성’이라는 개념은 바로 내가 『화해를 위해서』(2005)에서 사용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정영환을 비롯한 비판자들은 나의 책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불만인 부분만 강조하는 것을 넘어 곡해와 왜곡마저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 문제를 식민지지배 문제로 봐야 한다는 나의 제기까지 인용 없이 사용하면서도 『제국의 위안부』의 부제가 바로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이라는 점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p.124정영환은 내가 위안부 문제의 “그 책임을 일본 국가에 물을 수 없다”(480)고 한 것으로 정리한다. 하지만 나는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먼저 업자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을 뿐, 일본 국가의 책임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영환은 나의 논지를 왜곡했고, 그런 그의 왜곡은 아무런 검증 없이 SNS와 언론을 통해 한국사회에 확산되었다. 내가 ‘업자’ 등 중간자들의 존재에 주목한 이유는 일본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가혹한 폭력과 강제노동의 주체이고 그로 인한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괴나 사기 등은 당시에도 처벌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위안부의 ‘미움’이 이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판자들과 나의 차이는 위안부의 미움의 다양성을 보려고 했는지 여부에 있다. 정영환 등 비판자들이 그런 지적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그들이 의식했건 아니건, 한국/남성들에 대한 비판에 있다. --- p.128
저자 : 박유하저자 박유하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일본 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아직 무명이었던 오에 겐자부로와 가라타니 고진 등 현대 일본의 지성을 번역, 소개하는 한편 일본 근대문학을 ‘다시 읽는’ 작업을 해왔다. 민족주의를 넘어선 대화를 모색하는 한일 지식인모임 ‘한일, 연대 21’을 조직하는 등 탈제국/탈냉전적인 시각에서 동아시아의 역사화해를 위한 연구와 활동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세종대 일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주요 저서로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나쓰메 소세키로 읽는 근대』,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귀환문학론 서설引揚げ文?論序?』(일본어)과 공편저 『한일 역사인식의 메타히스토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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