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천대받던 사회불만세력’을 부나비로 이용하여 남남전쟁을 유발시켜 놓고, 이를 남침전쟁으로 연결하기 위해 벌인 고도의 이간작전이었다.
2. 광주인에 의한 독자적인 광주인 시위대는 없었다. 민주화운동도 없었다. 20-30만명이 동원된 폭동과 살인과 방화가 있었지만 이를 지휘한 한국인은 없다.
3. 국가는 북한군 작전에 소모품으로 이용된 4,634명의 광주-부나비들에 초특급의 유공자 대우를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의 돈으로 학교를 만들고 책자를 만들고 영상물을 만들어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국가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주고 있다. 국가는 북한이 써준 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썼다, 국가도 국민도 남북한-공산주의자들에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경천동지의 결론이 나오기까지
1) 2002. 8.16. 동아일보 의견광고 3,500자 중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습니다”라는 45자의 문장이 5.18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서울 및 안양 경찰이 보는 앞에서 5.18단체들이 상경하여 저자의 사무실, 아파트, 차량을 파괴하고 이어서 광주검찰이 저자를 안양에서 수갑을 뒤로 채우고 6시간 동안 이동하고, 광주에 가서 2시간 동안 수갑을 풀지 않고 또 조사, 8시간 광주검찰로부터 욕설과 구타 당함. 그후 101일 동안 광주구치소에서 수감생활 하였다.
2) 2008년, 필자는 18만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연구하여 1,722쪽의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의 머리말을 인터넷에 게시했다. “필자는 10.26, 12.12, 5.18, 김대중 내란음모, 1995~97년에 걸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이 모두에 대한 기록들을 열람하였다. 이 모든 기록들을 보면서 필자는 5.18은 김대중 등이 일으킨 내란사건이라는 1980년 판결에 동의하며, 북한의 특수군이 파견되어 조직적인 작전지휘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불순분자들이 시민들을 총으로 쏘는 것은 물론 제주 4.3사건에서처럼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러 놓고, 좌익들이 이를 군인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소위 모략전을 반복적으로 구사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으로 굳혀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심리적 내전’이 바로 5.18이라고 생각한다.” 광주 5.18단체들은 또 이 표현을 대상으로 고발을 했고, 검사가 기소했다. 이 재판은 1,2,3심가지 5년간 지속됐다. 필자는 1,2,3심 모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북한특수군 개입을 증명하지 못했더라면 또 감옥생활을 했을 것이다.